[땅집고] “급매물이 몇건 거래되면서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는데 이제 오를 일 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네요. 시세는 20억원대를 회복한 것 같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R공인중개사 대표)
서울 송파구 잠실의 대표 아파트 단지 중 하나인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전용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 3월 16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말 최고 실거래가 금액(21억원)과 비교해 5억원이 급락한 금액이었다. 당시엔 강남권 아파트 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처럼 회자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잠실리센츠 84㎡ 26층과 5층 매물은 지난달 21일과 28일에 잇따라 20억원에 거래돼 전 최고가를 대부분 회복했다.
정부 규제와 경기침체, 코로나 사태로 주춤했던 강남권 주택시장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유세 과세 기준일(6월1일)을 지나면서 보유세 절세를 위한 급매물이 사라졌고, 삼성동 GBC 착공, 잠실 마이스 개발 본격화 등 대형 호재까지 겹쳤다. 역대 최저 금리 상황에서 이달 말로 다주택자의 절세 매물까지 사라진 후에는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몰락 수준으로 치다고, 역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서울 집값의 상승세가 불안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고가 주택 신고가 행진
하지만, 시장에선 실물 경제상황에 역행하는 거래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타깃이 됐던 ‘15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에서 신고가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두달간 다주택자들의 절세용 급매물이 쏟아져 나왔던 재건축 단지에서 두드러진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 82㎡는 지난 1일, 올해 최고가인 22억6100만원에 팔렸다. 올해 1분기에 20억 안팎에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2억원 정도 올랐다. 송파구 잠실동 E공인중개사 대표는 “잠실 마이스 사업 추진 발표 이후에 아파트 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며 “집주인들도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강남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반등세다. 지난 4월 17억4500만원에 거래된 전용 77㎡는 최근 19억3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져 역시 두달 만에 2억원 가까이 올랐다.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5월 초까지 18억원 안팎에 급매물이 팔렸고 현재 호가는 20억원까지 올랐다. 지난달 현대자동차그룹이 강남구 삼성동 부지에 짓는 105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착공 허가가 난 이후로 삼성동·대치동 일대에서는 아파트뿐 아니라 중소형 빌딩, 상가 건물 관련 문의도 많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달 첫주(1일 기준) 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모두 오르거나 보합세를 기록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0% 변동률을 기록하면서 10주만에 하락세를 멈췄고, 송파구는 0.06% 상승해 10주반에 반등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도 9주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세로 돌아섰다.
■거래량 물꼬 텄다…부동산으로 자금 몰리나
10일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3구 아파트 5월 거래량은 총 541건으로 4월 거래량(370)보다 1.5배 늘었다. 지난 4월 강남구와 송파구 거래량은 각각 146건, 132건에 그쳤으나 5월 거래량(6월10일 기준)은 200건을 모두 넘어섰다. 실거래 신고 기간이 30일인 점을 감안하면 5월 거래량은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4월 거래량을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역대 최저(연 0.5%)로 인하한 가운데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이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부동자금의 규모는 지난 3월말 기준 사상 처음으로 1100조원을 넘어서 역대 최대 규모가 됐다. 시장 금리는 낮고 금융 상품의 수익률도 떨어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강한 규제로 잠시 하락세를 보였던 서울 집값이 6월 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를 위한 전세 매물이 사라지는 7월쯤부터 다시 한번 본격적인 상승세를 나타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이미 강북에서 거래되는 9억원 이하 아파트들은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었다”며 “올 하반기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강남 위주로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각종 경제지표가 수직으로 하락하고, 몰락하는 경제상황에 대한 현 정부의 대처능력이 의심 받는 상황에서 집값만 오르는 상황이 이어질 수 없다는 진단도 많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절세용 급매물 소화로 일시적으로 거래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대출 규제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시기는 아니다”며 “당분간은 과거처럼 상승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