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공시가격 인상에 따라 재산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 아파트 매물이 대거 쏟아질 것이다.”
정부는 작년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이후 올해 초 서울 주택 매매 시장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실제 12·16 대책은 ‘대출 금지’와 징벌적 세금 부과 등 위헌 논란을 부를만큼 강력해 이번에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동의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게다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정부 정책으로는 집값을 못 잡아도, 실물 경제가 무너져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6월에 접어 들면서 이번 정책이 실패했고,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급매물이 쏟아질 것이란 예측과 달리 지난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작년 5월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다주택·고가 주택 보유자들은 대부분 집을 팔기보다 세금을 내더라도 계속 보유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사이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주로 찾는 중·저가 아파트는 계속 오르고 있다.
■ “가격 낮춰 팔 생각 없다” 강남권 아파트 수억씩 올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2139건, 고가 아파트가 몰린 강남 아파트 거래량은 130건에 그쳤다. 작년 같은 달 서울 4400건, 강남구는 385건이었다. 신고 기한 내 추가 신고하는 거래가 집계되더라도 거래량이 1년 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강남구 대치동 신축 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경우 올 1~5월 94.5㎡(이하 전용면적) 단 1건 팔렸다. 그마저도 가격이 작년 하반기보다 6억원 더 오른 34억원(1월, 11층)이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는 이 주택형이 실거래가 수준인 34억원에 매물로 나와있다. ‘대치 아이파크’ 84㎡도 지난해 최고 23억원에 팔렸다가 올해 1억원 더 올라 24억7000만원(1월, 12층)에 팔린 이후 거래가 없다.
잠시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던 이른바 ‘절세(節稅) 매물’은 6월 1일 재산세 부과 기준일이 가까워오면서 사라졌다. 대치동 이화공인중개사무소 김태규 대표는 “대다수 집주인이 그냥 세금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매가격을 낮춰 파는 것을 거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 1분기 내내 하락세였던 강남 아파트 가격은 6월 1일 전후로 점점 상승세로 반전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조사 결과, 강남권 아파트 주간 변동률은 지난 5월 첫째주 -0.17%, 둘째주 -0.12%, 셋째주 -0.10%, 마지막주 -0.07% 로 점점 낙폭이 줄었다. 부동산114 조사에서는 5월 마지막 주 서울 아파트값이 9주만에 상승 전환했다.
12·16대책 이후 실거래 가격이 큰폭으로 하락했던 단지도 이전 최고가를 따라잡고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76㎡는 작년 12월 최고가 21억5000만원에 가까운 20억원대 매물이 나와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84㎡도 올해 4월 18억9300만원(4층)까지 하락했다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2억6000만원 올랐다. 작년 최고가인 23억5000만원과의 차이를 좁히고 있다.
■6억 이하 아파트도 가격 치솟아
강남 고가 아파트는 잠시 가격이 하락하기도 했지만, 서민·중산층 실수요자들이 찾는 중저가 아파트는 한번도 멈추지 않고 가격이 올랐다. 고가 주택 규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수도권 6억원대 이하 아파트 시장에서 속칭 ‘풍선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서울·수도권 6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 건수는 8만3328건으로 지난해 4분기 7만6362건 대비 9.12% 늘었다. 1분기 총 거래량(9만8047건)이 이전 분기(10만4796건)보다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6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의 거래가 눈에 띄게 증가한 셈이다.
이는 가격을 낮춘 매물이 늘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급한 수요자들이 오른 가격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동대문구와 은평구는 지난 1년간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5억원대에서 6억원대로 바뀌었다. 동대문구는 작년 5월 5억8000만원에서 올해 5월 6억2000만원으로, 은평구는 5억3500만원에서 6억1800만원으로 각각 올랐다.
■ “금리 인하 효과에 저가 매물 추가 상승 가능성”
한국은행이 연0.75% 였던 기준금리를 0.5%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낮추면서 시장의 유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더 몰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여파는 6억원 이하 저렴 주택 시장을 더 자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가 주택은 대출 규제가 워낙 강해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매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주택자의 주택 매도를 유도하기 위해 장기 보유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오는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배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정책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달 말까지 계약을 체결하려면 이미 매물이 나와야 하는데, 시중에는 매물을 찾기 어렵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로 인해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서울 아파트 전세금, 비규제지역 6억원 이하 주택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