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21일 낮 경기도 성남분당구 백현동 판교역(지하철 신분당선·경강선) 1번 출구 앞.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한 손에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들고 대형 공사 현장 앞을 지나고 있었다. 펜스 너머에서 ‘판교 알파돔 6 블록’ 골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 건물은 2021년이면 연면적 35만4000㎡ 규모 오피스 빌딩으로 완공한다. 이 건물에는 IT기업 카카오 본사와 계열사가 옮겨 올 예정이다.
알파돔 시티 공사 현장 바로 옆에는 약 20층 높이의 대단지 아파트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15일 판교역 1·2번출구 앞에 있는 ‘판교푸르지오그랑블’ 117.51㎡(이하 전용면적)기 올해 2월 24억3000만 원(15층)에 팔렸다. 작년 12월에 비해 3억 원, 3년 만에 7억 원 올랐다. 강남 한복판 아파트와 비슷하다.
코로나 사태로 집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판교에선 통하지 않는다. 이달 들어서도 이 아파트는 24억500만 원에 팔렸다. 판교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는 “판교에 IT 기업들이 계속 입주하면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지난달까지 5000만 원 정도 싼 급매 물건도 있었는데 이달 들어서는 급매물도 없고 호가도 계속 오른다”고 말했다.
IT 중심지로 떠오른 판교 집값이 경기 침체와 관계 없이 치솟고 있다. 강남 접근성이 좋은 데다 IT를 중심으로 대기업·벤처기업 등의 일자리가 계속 늘어난 영향이 크다.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0.54% 하락하는데도 판교 백현동은 같은 기간 집값이 1.14% 올랐다. 최근 일부 단지가 송파구 잠실동 대표 단지들과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다.
판교 주택시장의 수준은 강남 접근성으로 따질 수준을 넘어섰다. 강남 접근성을 기준으로 주변 지역 집값 수준이 결정되듯이, 머지 않아 ‘판교 접근성’을 기준으로 성남과 용인, 의왕 등 주변 지역 집값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밀집하는 판교 출퇴근 인구가 판교 주변에 집을 마련하고 있고, 경기 남부권에 판교를 중심으로 교통망이 형성될 전망이 크기 때문이다.
■ 판교 마지막 남은 땅 ‘엔씨소프트’가 접수했다
판교의 집값이 초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이곳에 ‘돈많은’ 기업들이 많고 이 기업들이 판교에 새로 짓는 건물에 계속 입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판교 알파돔시티 사업이 눈에 띈다. 총 사업비가 5조 원 규모로 13만7497㎡ 땅에 오피스 빌딩, 백화점,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이다. 알파돔시티 6-3블록과 6-4블록(연면적 18만7299㎡)은 2018년 7월 완공한 상태로 카카오, 씨티은행, 크래프톤 본사 등이 입주했다.
현재 알파돔시티에 6-1블록과 6-2블록(연면적이 35만4000㎡)에 사업이 진행 중이다. 내년 10월 준공 예정인 6-1블록은 카카오가 건물 전체에 10년 간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 건물은 지하 7층~지상 15층, 연면적 16만2775㎡ 규모로 총 7733명을 수용할 수 있다.
알파돔시티 6-1블록 맞은편 엔씨소프트 본사가 있는 판교글로벌R&D센터 앞(삼평동 641번지) ‘마지막 금싸라기 땅’도 곧 주인을 찾을 전망이다. 이 땅의 감정평가액은 8094억원에 달한다. 성남시는 6월5일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할 방침인데, 단독으로 의향서를 낸 엔씨소프트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현재 약 1300개 기업이 입주했으며 상시 근무인구만 7만여 명에 달한다. 강남, 구로에 있다가 판교로 옮기는 IT 기업이 늘면서 2014년 말 이후 현재까지 입주 기업 수가 30% 이상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공사 중인 알파돔과 옛 판교구청 부지 등 오피스 건물들이 입주를 모두 완료하면 판교 테크노벨리의 상주인구는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급매물 사라져, 현재 집값은 송파 수준
기업 입주가 이어지면서 판교 아파트값은 올들어 더욱 강세다. 판교 아파트는 판교역 주변부인 백현동과 삼평동, 그리고 서쪽 방면인 운중동에 모여 있다. 집값은 판교역·테크노벨리와 가까운 백현동이3.3㎡ 당 평균 4046만 원으로 더 높다. 운중동은 3176만원 수준이다. 작년 내내 백현동은 평당 3900만원, 운중동은 2900만원대에 머물다 올들어 각각 앞자리수가 바뀌었다. 백현동에서도 판교역이 제일 가까운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의 경우 집값이 3.3㎡ 당 4689만 원으로 집값이 송파구 평균 매매가격(3.3㎡ 당 4057만 원)과 맞먹는다.
직장인들이 많은 까닭에 판교역 인근 오피스텔 월세도 강남 수준까지 올랐다. 오피스텔 전용 27㎡ 는 보증금 1000만 원 기준으로 월세가 80만~85만 원으로 강남 역삼동 신축급 오피스텔 시세와 비슷하다. 2015년 3월 입주한 ‘강남역 센트럴 푸르지오시티’ 23㎡ 가 보증금 1000만 원에 임대료 85만 원에 매물이 나와있다. 유지아 판교우리부동산 대표는 “판교는 기업 수와 비교하면 주택이 부족해 오피스텔도 매물이 귀한 편”이라고 말했다.
■ “제2·3 테크노밸리 생겨도 판교역 주택으로 모여들 것”
판교 서북측 금토동 일원에 제2·제3 테크노밸리도 추진 중이다. 약 3000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며 15만 명의 상주 인구가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대로라면 현재 테크노밸리 근무자 수의 2배가 넘는 근무자가 추가로 유입한다. 이를 수용할 배후 주택가로 분당신도시도 있지만 지역이 더 가까운 판교가 특히 더 영향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철이 없는 서판교에 비해 지하철역을 낀 동판교는 역 주변에 아파트가 7개 내외로 약 4000가구 정도 밖에 안 되는 데다 부지가 부족해 더 이상 추가 주택 공급도 어렵다. 여경희 부동산114리서치팀 연구원은 “판교 테크노밸리가 더 개발되면 경기 남부에 판교 중심의 주택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