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YG사옥 때문에 볕 잘 들던 아파트가…이런 집 어찌 삽니까"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0.05.27 04:27
[땅집고] 지난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삼성강변아파트 거실 창에 거의 붙어서 YG신사옥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 /네이버 로드뷰

 

[땅집고] 오전 10시쯤 되자 '삼성강변아파트' 거실창 쪽에 YG신사옥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원래는 딱히 불을 켜지 않아도 해가 질 때까지 방 안이 환했거든요. 지금은 대낮에도 집안에 그늘이 져 춥고 컴컴해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있는 ‘삼성강변아파트’. 19가구로 구성된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로 1998년 12월 입주했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약 2년 전부터 ‘일조권(日照權) 침해가 심각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당초 아파트 정면 격인 동쪽에 공터나 다름 없는 자동차정비소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정비소 부지에 고층 대형 빌딩이 들어서면서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 양이 확 줄었다는 것.

[땅집고]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들어선 YG신사옥 조감도. 주변 아파트와 빌라보다 1.5배 이상 높다. /YG엔터테인먼트


이 아파트의 주민이 누리던 빛을 가로 막은 것으로 지목된 건물은 국내 유명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가 460여 억원을 들여 세운 신사옥이다. 지하 5층~지상 9층, 연면적 1만8905㎡ 규모다. 건물 높이는 최고 45.3m다. 2016년 12월 착공해 약 3년 만인 지난해 7월 완공했다. 주변 지은 낡은 빌라나 아파트가 대부분 지상 5~7층인 것과 비교하면 층수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공연이나 안무 연습을 위해 일반 오피스 건물보다 층고를 높게 지었다. 이 때문에 주변 건물의 1.5배 이상 높이로 건물이 솟아있다.

[땅집고] 일조권 침해에 대한 피해 보상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내용의 현수막.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땅집고] YG신사옥이 동향 단지인 삼성강변아파트 거실창 쪽에 들어서면서 입주민들의 불만이 불거졌다. /네이버 지도


삼성강변아파트 입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한 건 2018년 말이다. YG신사옥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건물 그림자가 아파트 거실 창에 드리워지는 바람에 대낮에도 집안이 어두컴컴해졌다는 것이다. 입주민들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원래 햇빛이 거실을 지나 부엌까지 들어왔는데, 이제는 베란다 절반 지점에서 멈춘다”, “잘 크던 화초도 빛을 못 봐 다 시들시들해졌다”, “빛이 안 드니 너무 춥다”라며 일조권 피해를 주장했다.

입주민 항의는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마포구청과 YG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항의 집회를 열고, 대책 마련과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아파트 외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땅집고] 현행 건축법상 일조권은 새로 짓는 건물이 기존 건물의 정남쪽에 있을 때만 적용한다. /서울시 도시계획용어사전


하지만 마포구청은 주민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파트 등 주거용 건물 주변에 새 건물을 신축하려면 ‘일조권 사선제한’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어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일조권 보호를 받으려면 새로 짓는 건물이 기존 건물의 ‘정남쪽’에 있을 때만 적용한다는 것. 삼성강변아파트의 경우 YG신사옥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에 들어서 법적으로 일조권 침해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YG측도 신사옥을 부지 정북향 건물의 일조권 보호 차원에서 상부를 비스듬하게 깎은 형태로 설계해 건축법상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입주민들은 “동향(東向) 아파트는 일조권 침해를 당해도 된다는 것이냐”며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마포구청 관계자는 “실제 생활 불편이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건축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며 “현재는 주민 불만이 추가로 접수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땅집고] 부산 '해운대 비치베르빌'과 딱 붙은 거리에 주상복합 '럭키 골든스위트'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전문가들은 현행 건축법이 최소한의 일조권만 보장하는 탓에 건축법을 잘 지켜서 지은 건물이라고 해도 ‘YG신사옥’ 처럼 주변 건물 일조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최근 상업지역에 주거시설을 다수 포함하는 오피스텔 등이 많이 들어서면서 ‘딱 붙은 건물’ 사례가 늘고 있는데, 건축법상 상업지역에선 건물 사이 간격을 50cm만 띄워도 되기 때문에 일조권을 인정받기 어렵다. 서울시건축사회 관계자는 “일조권이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행 건축법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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