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유명 상권 다 무너졌는데…'힙지로' 날이 갈수록 뜨는 비결

뉴스 전현희 땅집고 인턴기자
입력 2020.05.26 05:25 수정 2020.09.13 13:48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불황을 이겨내는 상권도 있다. 땅집고는 ‘다시 뛰는 상권’ 시리즈를 통해 잘 나가는 상권의 성공 비결을 취재했다.

[땅집고]카페 '호텔수선화' 전경 및 내부 모습./전현희 인턴기자


[땅집고] 지난 18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 역 1번 출구로 나와 골목안으로 들어가니 타일·조명 등의 제조업체와 인쇄소 간판을 단 낡은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가 나왔다. 지도 앱을 보고 골목을 헤매다가 을지로에서 이름이 알려진 ‘커피 한약방’을 찾았다. 이곳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 때 타격을 입었지만, 이날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에도 좌석의 약 70%가 손님으로 들어 차 있었다.

‘커피 한약방’ 맞은 편에 있는 제과점 겸 카페인 ‘혜민당’에도 두세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직장인 손님들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혜민당’의 한 직원은 “주변 직장인들이 붐비지 않을 정도로 찾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면 사람이 너무 많아 늘 줄을 서야 커피를 주문할 수 있었던 옛 모습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 낡은 인쇄소 건물들이 형성된 을지로 상권은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힙스터(hipster·유행보다 나만의 멋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됐다. 젊은층 사이에선 이 거리를 ‘힙지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의 상권과 마찬가지로 침체에 빠졌지만, 힙지로 상권은 주변 직장인들과 충성도 높은 고객들로 인해 비교적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낡았지만 예스러운 분위기·뛰어난 접근성에다 을지로 상주하는 직장인들의 배후 수요까지 성공하는 상권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광고·홍보 없이도 이용자 SNS 타고 유명세 얻어

[땅집고]베트남쌀국수 가게인 '도이농'과 카페 '커피한약방'./전현희 인턴기자


을지로 상권은 보통 3가역1번·11번 출구 앞의 낡은 인쇄소 건물들이 밀집한 사이로 개성있는 카페와 식당이 모인 곳을 가리킨다. 하지만 명확한 경계도 없고, 인쇄소 건물 사이 사이에 숨어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을지로의 인기 카페인 ‘호텔 수선화’의 간판은 인쇄업소 건물 내부(3층)에만 있다. 이 카페 관계자는 “홍보 수단이 SNS이기 때문에 건물 외부에 굳이 간판을 설치하지 않았다”며 “이런 독특한 분위기 자체가 을지로 상권의 강점이자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을지로 상권은 1960~70년대 한 때 공구 매장과 인쇄소들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2015년쯤부터 이곳의 목재 상점, 조명 가게 등에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드나들던 아티스트들이 아예 을지로에 작업실 겸 매장을 열면서 상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은지 30~40년 된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들 중 비어있는 곳에 카페나 바 등을 개업했다. 이런 을지로의 분위기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의 유행과 맞물려 2018년쯤부터 지금 같은 인기를 얻었다.

[땅집고]낡은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레스토랑 '그랑블루'의 입구가 보인다./전현희 인턴기자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SNS)는 을지로 상권이 유명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6년 총 1928건이던 인스타그램 포스팅 수가 2018년에만 1만705건 증가해 총 1만6971건으로 급증했다. 오픈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카페 ‘하이데어’와, 레스토랑 ‘그랑블루’의 매니저는 “이미 SNS 등으로 입소문이 많이 나기 때문에 따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별도로 광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땅집고]인스타그램 발전 양상과 을지로 상권 성장의 상관성./서울연구원 김은택 연구위원 제공


■업무지구 인근에 있으면서도, 저렴한 임대료가 강점

을지로 상권의 가장 큰 강점은 서울 한복판의 입지와 교통이다. 상권 500m 반경 안에 2호선과 3호선 환승역인 을지로 3가역이 있고 여의도, 용산구, 노원구 등으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버스 노선도 많다. 망원·문래· 이태원 등과 비교하면 을지로이 대형 업무지구를 배후로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에서 약 100m 앞에 있는 삼일대로 4거리에는 증권·은행과 대기업 본사 등이 분포한다.

을지로 상권의 또 다른 강점은 도심치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다. 을지로 한성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건물 4~5층의 경우 3.3㎡ 당 월 임대료는 4만~5만 원쯤”이라고 했다. 33㎡(10평) 기준 월세 40만~50만원 꼴로 임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마포구 연남동, 합정의 3.3㎡(1평)기준 월 임대료가 5만~8만원인 것에 비하면 월세가 10평 기준 30만~40만원 저렴하다. 서울 송파의 헬리오시티 1층 상가의 10평 남짓한 건물 임대료는 입주 초기 900만원에 나오기도 했었다.


[땅집고]배후수요의 이동경로./전현희 인턴기자



■ 평일이나 주말 모두 북적북적

을지로의 낡은 건물들은 한동안 지금 모습이 보전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가 3월 발표한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에 따라 세운 정비구역의 89개 구역이 도시재생으로 전환하면서 을지로 대다수 지역 또한 이전 모습을 유지하게 됐다. 이곳으로부터 1~2km 정도 떨어진 종로 일대가 재개발로 변신한 것과 대조적이다.

도심을 보존하는 것이 좋은지, 개발하는 것이 좋은 지는 논란이 있다. 다만, 이곳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은 서울시 발표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을지로3가 구역에서 6년간 미술작업실을 B씨는 “을지로가 지금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형태로 보존된다면 ‘힙지로’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권강수 상가의 신 대표는 “종각 상권은 임대료가 비싸 이를 감당할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임차가 가능한 반면 을지로는 소규모 개성 강한 창업자들이 꾸준히 유입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땅집고]을지로 상권 일대 재개발 계획./전현희 인턴기자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일부는 예정대로 재개발을 추진한다. 주상복합아파트 ‘힐스테이트 세운’이 998가구 규모로 올해 안에 분양한다는 계획이고, 3단계 개발까지 마무리되면 총 3600여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을지로3구역 현대부동산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에 구매력 높은 수요층이 들어서면 상권이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오피스 상권은 되레 주말이 한가한 반면, 을지로는 주말에도 인쇄공장이나 도기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는 곳이 많아 일주일 내내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라며 “최근 이태원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주말 상권이 다시 주춤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을지로 상권은 전처럼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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