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의 법률톡톡] 우량 임차인 믿고 들어간 건물, 계약하자마자 임차인이 나갔다면
[궁금합니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서 은행이 입점한 건물은 그야말로 ‘특A급’으로 꼽힌다. 은행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밀릴 위험이 없는데다가, 한 번 입점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업종이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자영업자와 비교해 폐점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은행이 지점 이미지 관리를 위해 건물을 깔끔하게 사용하는 것도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A씨는 2018년에 약 20억원짜리 상가 한 채가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 곧바로 매수를 결심했다. 해당 상가에 B은행이 입점해 있었던 것. B은행이 내고 있는 임대료가 815만원(보증금 9억65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임대수익률이 주변 건물보다 높았다. 임대차계약 기간도 아직 4년 이상 남아있었다. A씨는 본인이 ‘월세 부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상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A씨에게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 계약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B은행이 임대차를 종료하고 점포를 빼기고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A씨가 기존 건물주로부터 승계받은 B은행과 맺은 임대차계약서를 확인해보니 ‘임차인인 은행은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이전에 계약을 임의로 중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A씨는 상가에 은행이 입점한 것만 보고 임대차계약서를 확인하지도 않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뒤늦게 매도인에게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도인을 상대로 계약금 2억원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요 청구 원인은 ‘착오를 이유로 한 의사 표시 취소’. 하지만 1심 재판에서 A씨는 패소했다. 정말 A씨가 매매계약을 취소하거나 납부했던 상가 매매대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는 걸까.
[이렇게 해결하세요]
일반적으로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적게는 수 천만원, 많게는 수 억원이 오간다. 그런데 신중한 검토 없이 막연하게 ‘대박이 날 것 같다’는 등 순간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휩쓸려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A씨와 계약을 체결한 매도인이 고의적으로 거래상 중요한 사실을 속인 것은 아니다. 물론 A씨가 ‘의사 표시의 착오’라는 법리를 적용해 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 착오를 이유로 부동산 거래를 취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① 법률 행위의 내용에 대해 착오가 있어야 하고
② 계약상 중요한 부분의 착오여야 하며
③ 해당 착오가 중대한 과실에 기인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거래당사자 대부분은 이런 3가지 착오가 아닌 ‘동기의 착오’를 범한다. 예를 들면 전원주택을 지을 목적으로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 당시에는 해당 부지에 당연히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건축이 불가능한 것이 대표적인 동기의 착오다.
A씨 역시 ‘동기의 착오’로 상가 매매 계약을 섣불리 체결했다. 상가 매입시 계약서를 확인하지 않고 ‘B은행과의 임대차계약은 2022년 6월 9일까지 존속하며, 이 때까지 매달 임대료 815만원을 받을 수 있다’,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B은행에게 보증금 9억6500만원을 반환하면 된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런 증거만으로는 A씨가 계약 당시 이 같은 동기를 의사 표시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기존 건물주가 A씨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
결국 A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애초 B은행의 임대차 승계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계약 과정에서 임대차계약서조차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컸다. ‘한 번 체결한 부동산 계약은 취소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항상 제 3자의 시각에서 신중하게 계약을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