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철로 서쪽 용산 드래곤호텔 방면 구름다리로 걸어가면 나무와 잡초가 우거진 넓은 땅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한복판 용산에 ‘버려진 땅’으로 남아 있는 이곳이 용산 철도정비창이다. 이곳은 용산국제업무지로 지정돼 한때 높이 620m에 이르는 111층 빌딩을 비롯한 대형 오피스 건물과 고가 아파트 등 23개동(棟)을 짓는다는 화려한 개발 조감도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은 시행사와 시공사간 갈등, 서울시의 정책 혼선, 소송전으로 얼룩지며 사업이 무산됐었다. 그런데 지난 6일 새로운 계획이 발표됐다. 현 정부 들어 서울에 주택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우기던 국토교통부가 갑자기 별다른 설명도 없이 서울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해 집값을 잡겠다며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아파트 80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에 주택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갑자기 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한 것은 의외”라면서도 “어찌됐든 용산정비창 아파트 개발은 중장기적으로 서울 집값 안정에 일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용산 정비창, 13년 우여곡절 끝에 미니신도시로 개발
용산정비창 부지(51만㎡)는 원래 경부선과 호남선을 오가는 열차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차량기지다. 서울시가 2006년 수립한 국제업무지구 계획은 이 부지를 포함한 한강로 3가 일대 56만㎡를 국제업무와 상업 중심지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10년 전 예상 사업비만 총 31조원 규모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 땅주인이던 코레일,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자금 조달 방식과 개발 계획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분쟁을 벌이다가 급기야 소송까지 벌였다. 장기간 소송 끝에 코레일은 작년 4월 토지반환소송에서 이겨 토지대금 2조4167억원과 함께 35만㎡ 토지 소유권을 확보했지만, 사업지는 황무지로 남아 있다.
2018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싱가포르에서 “여의도와 용산을 통합 개발하겠다”며 다시 사업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주변 집값이 오르자 박 시장은 “무기한 보류하겠다”며 발언을 철회했다. 그렇게 또 2년이 흐른 뒤 정부가 다시한 번 새로운 개발안을 내놓았다.
■ 서울시 “용산정비창 개발에 다양한 가능성 열려있다”
국토부는 내년 말까지 구역 지정을 완료하고 2023년까지 사업을 승인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8000가구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 외에 세부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에 발표할 ‘2040 서울플랜’ 안에 용산 정비창 개발안을 포함하기로 했다. 양돈욱 서울시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 팀장은 “공공분양, 민간분양, 임대후 분양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분양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며 “하반기 발표에서는 이 주택이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 정도만 언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 땅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007년 사업 주체인 ㈜용산역세권개발이 코레일에서 사들인 토지 매입 가격 총액은 약 8조원(3.3㎡당 7400만원)이었지만 삼성동 옛 한전부지를 현대차가 10조원에 사들인 사례를 보면 경쟁이 붙을 경우 이보다 비싼 금액에 팔릴 가능성이 크다. 이 때 분양가 상한제가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토지 비용에 일정 건축비를 더하는 분양가 산정 방식상 정부의 바람과 달리 분양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실제로 같은 도시개발방식으로 개발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 경기 고양시 덕은지구 아파트가 웬만한 서울 아파트보다 비싼 가격(3.3㎡당 2600만원)에 분양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토부는 도시개발사업의 토지 공급 방식을 경쟁입찰에서 추첨제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토지 입찰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초고층 빌딩 23개동을 짓는다는 기존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어떻게 되는걸까. 현재 업무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땅은 정비창 부지 외에는 없다. 기존의 용산 국제업무지구에서 공급하기로 한 주택 수는 약 5000가구다. 이번에 8000가구로 늘어난만큼 업무 지구 규모는 줄어들 전망이다.
양돈욱 서울시 팀장은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아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2007년 당시 구상의 연장선에서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에 발표한 조감도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주택 건설 발표로 전체 업무지구 개발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업계의 기대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주변 부동산 술렁…코로나 이후 문의 쏟아져
정부 발표 이후 용산 정비창 주변 부동산 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사무소에는 매물을 사겠다는 문의 전화가 크게 늘었다. 특히 용산역을 사이에 두고 정비창 토지와 맞붙어 있는 재개발 사업지인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용산자이부동산 관계자는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의 경우 매물이 평균 3.3㎡(1평)당 1억원을 찍은 이후 코로나로 사태로 한동안 매수 문의가 뜸했는데, 정부 발표 이후 갑자기 문의전화가 쏟아져 향후 가격이 상승할 조짐도 보인다”고 했다. 현재 전면1구역은 대지 지분 1평당 단독주택의 경우 8500만~1억원, 다세대주택은 약 2억원대를 호가한다.
정부는 주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우려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가격 급등지역은 공공 재개발 사업 추진을 배제하는 등 고강도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비창 주변에 새 아파트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 규제에도 용산 정비창 인근 집값 상승이나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긴 역부족일 전망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변 아파트 가격 자체가 높아지면 상한제를 적용해도 분양가 상승을 막기 어렵다” 며 “정부가 다각도로 주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 분양 방법과 시기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