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만난 건축주 멘토] 오세왕 지디엘건축사사무소 대표 "3박자 잘 맞아떨어져야 좋은 건물이 나옵니다"
“안목이 뛰어난 건축가와 무조건 저렴한 가격에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시공사, 고집이 센 건축주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돈은 돈대로 들고, 세입자조차 구하지 못하는 망한 상가가 탄생할 겁니다.”
건물을 짓는다는 건 건물 주인인 ‘건축주’, 건물을 디자인하는 ‘건축사’, 공사를 하는 ‘시공사’ 등 삼자 컬래버레이션(협업)이다. 좋은 건물이 나오려면 삼자간 궁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세왕 지디엘건축사사무수 대표는 “궁합이 맞지 않으면 설계자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남고 시공사와 건축주는 자금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건물은 세입자에게도 외면받게 마련이다.
오 대표는 포스코 강남사옥, 수원 삼성전자 연구개발센터 등 국내 유명한 오피스 빌딩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탁월한 설계 능력을 선보였다. 그를 만나 몇몇 사례를 통해 망하는 상가를 만들지 않는 비법 3가지를 제시했다.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사 모두 지향점 같아야
오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건물 콘셉트를 확고하게 정하고 비슷한 지향점을 갖는 작업자를 찾는 것이 건축주로서의 첫 걸음”이라고 했다. 그는 건축에 참여하는 이들의 성향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비용이 저렴한 대신 퀄리티(품질)가 낮은 공사를 원하는 유형, 디자인이 훌륭하고 돈을 좀 들이더라도 수준 높은 설계와 시공을 지향하는 유형이다. 되도록이면 세 사람이 원하는 지향점이 같아야 성공적인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 돌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건축주는 시공사와 설계사가 지향하는 지점을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건축주가 원하는 건물 모습이 있더라도 비용 문제로 결국 품질을 낮추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오 대표는 “네모반듯하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이른바 ‘막상가 건물’에 작품성 뛰어난 건축가를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 퀄리티가 요구되는 건물을 짓기 위해 수준높은 건축가와 작업해 놓고 막상 시공할 때는 저렴한 시공사를 찾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시공사가 다른 자재를 써보라고 권유하거나 설계대로 짓지 않고 나중에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자재를 쓰거나 공사비가 덜 드는 방향으로 설계를 일부 바꿔 시공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결국 우수한 건축가를 고용한 만큼 비용을 낭비한 셈이다.
■내 건물 하나로 동네 전체 살린다?
간혹 훌륭한 건물 하나로 동네 전체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랜드마크 건물’ 역할을 하면서 주변 건물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서울 이태원, 성수동, 연희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들의 경우 노후 주택가나 공장지대의 낡은 건물을 개조해 특색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입점시켜 방문객이 늘고 주변 건물까지 모두 바뀌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하지만 오 대표는 한적하고 개발이 덜 된 지역에 땅값이 싼 것만 보고 함부로 랜드마크 건물을 짓겟다는 유혹에 빠져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황량한 땅에 ‘멋진 건물을 지으면 스타벅스가 들어오겠지?’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건축주도 있는데 모두 헛된 생각”이라고 했다.
오 대표는 몇 년 전 서울 근교 외곽에 4층짜리 건물을 설계했다. 주변엔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창고, 공장, 작은 주택 밖에 없었다. 오 대표는 설계상으로는 1층에 카페 또는 전체건물을 통임대로 줄 요량으로 층마다 테라스가 딸려있고 1층은 통유리로 된 건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준공 1년이 넘도록 세입자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임차 문의가 이따금씩 들어왔지만 공간이 너무 넓고 임대료가 비싼 탓에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오 대표는 “대도시 외곽이나 지방에 짓는 상가에는 평범한 음식점이나 편의점, 옷가게 등이 주로 들어온다”면서 “이들은 화려하고 멋진 건물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돈 들여서 건물 층고를 높이거나 통유리를 넣는 등 도심에서 볼 법한 멋진 설계를 해봐야 조그만 구멍가게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평범한 지역에는 평범한 디자인에 적정한 공사비로 지은 건물이 더 활용 가치가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망하는 상가 만들지 않으려면…
개발이 덜 된 지역에 잘 지어 명소로 거듭난 건물들도 많다. 이렇게 되려면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오 대표는 인천 서구의 한 카페를 예로 들었다. 당시 땅주인 A씨는 자신이 소유한 부지에 특색있는 건물을 짓고 카페로 통임대를 주고 싶어했다. 이름있는 설계자와 시공사를 통해 건물 외관은 눈에 띄게 만들었다. 문제는 주변이 온통 공장지대여서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그런데 몇 개월 기다린 끝에 A씨 마음에 드는 세입자가 나타났다. 그는 이 임차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임대료를 최대한 깎아주는 대신 임차인의 수익 일부를 나누기로 한 것. 이 카페는 문을 연 이후 지역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이른바 ‘슈퍼 임차인’이 됐다. A씨가 성공하자 주변에 방치됐던 공장들이 하나 둘씩 개조되기 시작했고 특색있는 임차인들이 잇따라 둥지를 트기 시작했다.
오 대표는 “A씨의 경우 당시 시공사가 서울 청계천 상가에 가서 현장에 꼭 필요한 자재를 직접 제작해올만큼 열정이 대단했다”며 “황량한 땅에 건물을 지어 명소로 거듭나게 하려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설계자와 시공사간 궁합은 물론 건물주와 임차인도 같은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