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등산객인데 한우 사먹겠지?" 190억 혈세 털어먹고 폭망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0.05.04 04:47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전국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곳곳에서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땅집고는 ‘벼랑 끝 상권’ 시리즈를 통해 몰락하는 내수 경기의 현실과 자영업자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열 두번째 현장으로 동두천 육타운을 찾았다.

[벼랑 끝 상권] 등산객에게 소고기 팔겠다던 동두천 육타운의 '예견된 폭망'

[땅집고] 소요산역 초입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지은 축산 쇼핑몰인 '육타운'. /이지은 기자


“비싼 한우 사먹으러 굳이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얼마나 되겠어요. 여기 오는 등산객들은 파전에 막걸리도 비싸다고 집에서 도시락 싸들고 오는 노인들이 전부인데요.”(경기 동두천 ‘소요맛거리’ A식당 관계자)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종착역인 소요산역에 도착하자 형형색색 등산복을 갖춰 입은 중장년층이 줄줄이 내렸다. 이들을 따라 1번 출구로 나와 5분쯤 걸으니 소요산 초입을 알리는 표지판 바로 옆에 2층짜리 대형 건물이 보였다. 각종 브랜드 축산물을 판매하는 경기도 동두천 ‘육(肉)타운’이다.

[땅집고] '육타운'에 입점한 매장은 모두 폐점한 상태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지상 1층 '맛드림 정육식당'에 출입문에 각종 공과금 고지서가 수북히 꽂혀있다. /이지은 기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다. 그런데 축산물을 파는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입점 업체가 모두 폐점한 것. 잠긴 매장마다 각종 공과금 고지서가 수북히 꽂혀있었다. 입점 상인들이 쓰던 육류 전용 냉장고와 광고 배너를 비롯해 각종 집기류들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출입 금지’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땅집고] '육타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예 출입이 금지됐다. /이지은 기자


육타운은 대지면적 2만1200여㎡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2012년 준공했다. 동두천시는 2009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축산 농가의 안정적 소비처 확보 등을 위해 실시한 브랜드 육타운 공모에 뛰어들어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동두천시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이렇게 해서 국비 40억원, 도비 30억원, 시비 120억원 등 총 190억원이 투입돼 육타운 건설이 추진됐다.

시는 이 곳이 도내에서 생산한 고품질 쇠고기를 사려는 소비자들로 붐빌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지은지 8년 넘도록 찾는 손님이 없어 입점 상인들이 전부 나갔다. 동두천시 내부에서조차 “건물 용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나온다. 육타운은 이제 애물단지가 됐다.

■“누가 소요산까지 와서 한우 사먹어요?”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애당초 동두천시가 ‘육타운’ 입지·수요 조사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소요산 방문객 연령대는 주중·주말 관계 없이 중장년층이 90%에 달한다. 이들에게 비싼 한우를 팔겠다는 계획 자체가 터무니없었다는 것. 차라리 소요산 자락이 아니라 상업시설이 많은 동두천 시내에 ‘육타운’을 지었더라면 그나마 수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땅집고] 소요산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는 포장마차가 중장년층 등산객들로 붐빈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육회 3만원, 갈비찜 2만5000원 등 중장년층 등산객들이 한 끼 식사로 삼기에는 고가인 메뉴가 대부분이다. /이지은 기자


소요산을 찾은 등산객 백모씨(76)는 “10년 넘게 이 곳으로 등산을 다녔는데도 ‘육타운’에서 뭘 사거나 식사하는 손님을 본 적이 없다”며 “다들 집에서 간단한 도시락이나 주류를 싸온다. 점심 한 끼에 만 원 이상 쓰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낮 12시대 점심시간에 이 일대 식당 중 가장 붐비는 곳은 천 원에 호떡 두 장을 판매하는 지하철역 근처 포장마차였다.

까다로운 입점 조건도 ‘육타운’ 상가가 망한 원인이다. ▲준공 후 10년 동안 브랜드 육만 판매할 것 ▲과거 3년 동안 브랜드 운영사업을 지원받은 경영체나 특허청에 상표 등록된 브랜드 경영체가 입점할 것 등이다. 입점 문턱이 높다 보니 공실을 채울 임차인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동두천시가 개장 3년만에 일반사업자 입점을 허용하고, 쇠고기 뿐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 한약재 등을 판매하는 업체도 받아들이면서 상가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졌다.

■ “개장 후 5년간 임대료 5억원 버는 데 그쳐”

[땅집고] 올 2월 '맛드림 정육식당'을 마지막으로 육타운은 사실상 영업이 중단됐다. /이지은 기자


현재 ‘육타운’ 운영은 중단된 상태다. 최초 개점 당시 대형 축산업체 5곳이 입점했다. 하지만 적자를 견디지 못해 2013년 거창축협·양주축협·동두천농협이 철수한데 이어 2014년 홍천축협 등이 줄줄히 떠났다. 마지막까지 영업한 곳은 ‘맛드림 정육식당’으로 올 2월 퇴거했다.

동두천시에 따르면 입점 업체들은 매출액의 7%를 임대료로 내는 3년 짜리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동두천시 농업축산위생과 관계자는 “연도별 임대료 수입 자료는 따로 정리한게 없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육타운 개장 이후 5년 동안 동두천시가 거둔 임대료 수익이 5억원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동두천시가 ‘축산물브랜드육타운 사업성분석 및 용역보고회’ 자료에서 연 평균 방문객 52만~67만명, 연 평균 매출 규모 210억원으로 5년 안에 투자비(190억원)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고 발표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땅집고] '육타운'에 100억원을 투입해 문화생활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말하는 최용덕 동두천 시장. /화면캡처


최용덕 동두천 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육타운 부지에 카라반 100대를 설치해 글램핑 등 체류형 관광지로 재단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소요산 자연 환경과 연계하는 사업이어서 기존 육타운보다 콘텐츠 활성화가 쉬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규 사업에는 100억원 정도가 필요해 결국 ‘혈세 낭비’ 지적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상권을 살려보려고 하지만, 철저한 사전분석 없이 예산을 투입해서 ‘육타운’ 같은 황당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사전에 면밀한 수요·입지 조사를 마친 후 사업을 진행해야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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