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복덕방(공인중개사무소)에서 제가 부른 가격으로는 절대 중개할 수 없다면서 그냥 가라고 했는데요. 며칠 후 거의 비슷한 조건에 매물로 나온 다른 집이 3억원 더 비싸게 팔렸어요.”
최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속칭 ‘가두리’ 영업으로 피해를 봤다는 집주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가두리’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집주인 의사에 반해 일정 시세 이하로만 매물을 내놓는 행위를 말한다. 집값을 일정 가격 이하로 가둬 놓고 관리한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두리’에 당했다는 집주인들은 이런 행위가 시세를 교란하는 집값 담합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공인중개사들은 “가두리 영업은 실체가 없다”고 맞선다. 집주인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매물을 내놓는 것에 대응해 시세대로 거래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 집주인들 “거래 성사시키려 시세 일부러 낮춰”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가두리 영업’은 공인중개사들이 이용하는 사설 내부 거래망을 통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거래망에 고가 매물이 올라오면 바로 삭제하고, 실거래 신고도 최대한 늦게 하는 수법으로 낮은 시세를 한두달 정도 유지한다. 중개사들끼리 정한 상한 가격 이상으로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예컨대 집주인에게 8억2000만원짜리 매물을 받아 놓고 온라인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는 8억원에 매물을 올리는 식이다. 이렇게 낮은 가격을 보고 매수자가 나타나면 집주인에게 “8억2000만원에는 매수자가 없다. 8억원에 거래하자는 매수자가 어렵게 나타났으니 500만~1000만원 정도 더 받는 정도로 협의해야 거래가 될 것 같다”고 유도하는 식이다. 중개사들이 정한 상한가 이상으로 거래하는 중개사는 모임에서 퇴출시키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두리’ 거래에 피해를 입었다는 한 집주인은 “중개사들 입장에서야 호가를 몇천만원 낮춰서라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게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집주인을 대리하는 중개인으로서는 어떻게든 가격을 높게 받아줘야 하는데 정반대로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 중개사들 “시세대로 거래…가두리는 없다” 주장
중개사들 입장은 다르다. 집주인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다는 것. 경기도 광명시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중개사들이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매물을 내놓는 걸 거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집주인들이 오히려 시세보다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에 자기 집이 팔릴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시장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확정되지도 않은 개발 호재를 들먹이며 비싼 가격에 집이 팔리기를 원하는 집주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적발된 집값 담합 행위는 전부 집주인들이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정 시세 이하로 매물을 내놓지 않는’ 행위였다. 집주인들이 뭉쳐 특정 가격 이상으로 집을 팔지 말자는 현수막이 걸리고, 주민들이 시세에 매물을 내놓은 공인중개사무소를 협박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 집값 변동성 커지면서 갈등 증폭
국토교통부는 최근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해 집값 담합 금지 규정을 강화하고 부처 간 합동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서도 집주인들이 일정 가격 이상으로만 매물을 내놓아 가격을 높이는 담합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 올해 2월21일부터 시행된 공인중개사법은 ▲특정 공인중개사의 중개의뢰를 제한 또는 제한을 유도하는 행위 ▲매물을 시세보다 현저하게 높게 표시·광고·중개하는 특정 공인중개사에만 중개 의뢰를 하도록 유도하는 행위 ▲특정 가격 이하로 중개의뢰를 못 하도록 유도하는 행위 등을 단속 대상으로 삼았다.
오히려 집주인이 저가 매물 등록을 요구하는 가두리 부동산을 이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안내문과 현수막을 게시했다가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적발되기도 했다. 국토부는 “가두리 영업을 단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집중 단속 사항은 아니다”라면서도 “공인중개사들이 시세를 조작해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허위매물을 올리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 변동성이 워낙 커지다보니 곳곳에서 집주인과 중개사간 갈등이 확산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 잠실 리센츠 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19억원대에 거래되던 주택이 올 3월 16억원으로 신저가를 기록했다가 한달만에 다시 22억원에 팔려 신고가를 기록하면서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무소 모두가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최근 집주인들이 주장하는 시세와 공인중개사나 매수자들이 사이에 시세를 둘러싸고 인식 차이가 커지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