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전국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곳곳에서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땅집고는 ‘벼랑 끝 상권’ 시리즈를 통해 몰락하는 내수 경기의 현실과 자영업자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열한번째 현장으로 인천국제공항 에어조이를 찾았다.
[벼랑 끝 상권] 사실상 가치 '0원'…경매 전전하는 비운의 쇼핑몰 '에어조이'
지난 16일 낮 12시쯤 찾은 인천국제공항.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직원들 외에는 공항 내부엔 인적조차 드물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장기주차장 부지를 따라 15분쯤 걸으니 자기부상철도 합동청사역 바로 앞에 큼지막한 건물이 보였다. 꼭대기층에 무지개색으로 ‘AIRJOY’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지은 유일한 대형 쇼핑몰이다. 현재는 에어포트 로얄플라자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에어조이라고 부른다.
에어조이 건물 1층으로 들어가자마자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건물 내 점포 중 불을 켜둔 곳이 없어 대낮인데도 깜깜했다. 에어포트 편의점, 카페 초크 등 1층 점포는 전부 폐점했다. 에스컬레이터에는 운행정지,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었고, 엘리베이터도 3개층(지하 1층, 1층, 4층)을 제외하고는 다른 층으로 가는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 정상 영업하고 있는 점포는 지하 1층에 있는 '이마트 인천공항점'뿐이다.
에어조이는 809억원을 들여 2004년 완공했다. 지하 3층~지상 9층 규모에 연면적 6만4700여㎡(1만9572평)이다. 땅은 인천공항공사 소유다. 점포 수는 518개. 2002년 이 상가를 분양할 당시 ‘1일 27만명의 유동인구를 독점하는 최대 규모 상가’라고 광고했다. 하지만 문을 연 지 16년이 지났지만 에어조이는 유령건물이 됐다.
에어조이 건물은 현재 인천지방법원을 통해 경매가 진행 중이다. 최저 매각가격은 35억원으로, 사업비(809억원)의 4% 수준이다. 하루에도 수십 만 명이 드나드는 공항 바로 옆 대형쇼핑몰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 관광단지 개발 믿고 분양했는데…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 인근에 추진했던 각종 개발 사업이 좌초한 게 에어조이를 유령상가로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20여년 전 영종도 일대에선 밀라노디자인시티, 쁘레타뽀르떼패션단지, 영종브로드웨이 등 수조원대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수시로 발표됐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영종도에서 진행되던 초대형 사업은 대부분 중단됐다.
인천시나 개발사업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영종도에서 추진한 사업은 애초부터 현실성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국내 자본으로 추진했던 에어조이 사업은 분양을 진행했고 건물도 다 들어섰다. 하지만 에어조이에 손님을 몰아 준다던 주변 사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제대로 개장도 못하고 유령건물이 된 것이다.
에어조이는 입지 선정과 사업 콘셉트부터 잘못됐다는 말도 나온다. 운서동 주민 A씨는 “에어조이 주변에는 그랜드하야트·파라다이스시티 같은 호텔이 대부분인데, 그저그런 쇼핑몰을 찾을 고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에어조이 지하 1층 이마트 고객은 인근 오피스텔 주민이 대부분이다. A씨는 “인천공항 근처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영종하늘도시’에 지어졌더라면 이렇게까지 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809억원에 지었는데 경매에선 35억원 ‘헐값’
에어조이가 속칭 ‘폭망’하면서 상가 투자자들도 투자금을 거의 날렸다. 2002년 분양 당시 3.3㎡(1평)당 분양가가 400만~1600만원 정도. 분양을 받았던 230여명은 시행사인 ‘에어포트 로얄프라자’ 측에 분양대금 총 507억원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인천공항공사도 시행사에 소송을 걸었다. 에어조이가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지어진 만큼 공사에 토지·시설사용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건물 자체가 침체되는 바람에 시행사가 장기 체납한 것이다. 2018년 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가 보유한 체납액 약 448억원 중 92%(410억원)가 에어조이에서 받지 못한 임대료였다.
시행사가 파산하면서 2015년 에어조이가 처음으로 경매에 나왔다. 첫 감정가는 500억원이었지만, 수 차례 유찰되면서 지난해 3월 감정가의 10% 수준인 51억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에어조이에 대한 경매가 다시 시작돼 아직도 진행 중이다. 건물을 낙찰받은 B씨가 채무 문제로 35억원에 다시 경매에 나왔다. 당초 사업비(809억원)의 4%에 그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싸게 나와도 매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에어조이를 경매로 낙찰받아도 건물만 소유할 수 있을 뿐, 부지는 인천공항공사 소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초 시행사와 인천공항공사가 계약한 토지 임대기간이 25년이어서 건물을 앞으로 10년 정도만 쓸 수 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토지사용기간 종료와 동시에 시설물 소유권이 공사로 넘어올 예정"이라며 "시설물 원상회복, 즉 철거가 원칙”이라고 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유령건물을 단장해서 재개장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나 인천공항공사와의 토지계약기한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현재 ‘에어조이’ 건물 가치는 ‘제로(0)’에 가깝다”며 “공사가 다시 투자자를 모집해서 호텔이나 위락시설로 변경하지 않는 건물이 다시 살아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