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코로나 사태가 덮쳐 국민들 호주머니는 바짝 말라버렸습니다 … 이 시국에 세금 폭탄을 터뜨리는 건 공멸하자는 얘기입니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 글 중)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 급등에 따라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큰 폭으로 오를 예정인 주택 보유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오랜 경기 침체에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정부의 공시가격 인상안에 따라 1주택자까지도 많게는 수백만원의 보유세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뿐 아니라 우리 정부 역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각종 부양책을 쏟아 내는 상황에서 주택 보유자에게만 증세를 감행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 “공시가격 인상 철회하라” 청와대 청원에 1만2000명 서명
지난달 3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2020년 공시가격 인상안의 전면 철회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 참여 인원은 하루 만에 1만2000명을 넘겼다. 청원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이 무너졌고, 소주성(소득주도성장)으로 민간 경기는 말 그대로 ‘거지같은’ 상황인데,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덮쳤다”며 “정부의 이번 공시지가 인상은 필경 금융위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전국 기준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은 서울의 아파트 보유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서울의 공시가격은 14.75% 올라 전국 평균(5.99%)보다 3배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고, 특히 강남구의 경우 전국에서 가장 높은 평균 25%가 상승했다. 강남 한강변 신축단지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84㎡의 경우 올해 보유세가 1100만원이 넘는다. 작년 765만원에서 400만원 가량 약 44% 상승했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 84㎡는 작년 공시가격보다 4억원 오른 15억1400만원으로 보유세가 작년 404만원에서 587만원으로 올랐다.
문제는 이미 강남권 주요 아파트 등에서 가격 하락세가 나타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은 공시가격이 작년 11억5200만원에서 올해 15억1300만원으로 급등해 보유세가 작년보다 약 200만원 늘어난다. 하지만 이 단지는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강남3구 급락 여파로 매매가격 호가가 1억원 이상 하락한 상태다.
■ 강남, 강북 가리지 않고 집단 이의제기 움직임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시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강남구에서부터 공시가격 인상에 집단 이의 신청에 나서고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사업 비상대책위원회격인 ‘은마반상회’는 지난달 20일쯤부터 단지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공시가격 이의신청서를 받고 있다. 이승열 은마반상회 소장은 “은마아파트는 지은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로 집주인 중 십중팔구는 20년 이상 거주한 은퇴세대가 많아 그분들의 어려움이 예상보다 너무 크다”고 했다.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입주자대표회의도 다음달 6일까지 이의신청서를 내기로 했다. 지난해 입주한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지난해 13억5200만원에서 18억5000만원으로 올랐다. 인근 ‘대치미도’·‘대치쌍용1·2차’ 입주자대표회의도 단체 민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 뿐만 아니라 목동이나 경기도 신축 아파트에서도 집단 이의신청 움직임이 보인다. 올해 공시가격이 평균 27% 오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7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단체 연명으로 이의 신청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3일까지 주민들을 상대로 신청을 받아 한국감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경기 의왕시 ‘인덕원 푸르지오 엘센트로’에서도 입주예정자 카페를 중심으로 공시가격 이의신청을 독려하고 있다.
■ 강남3구 여야 가릴 것 없이 ‘보유세 인하’ 공약 내세워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강남3구에 출마하는 선거 후보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유세 인하를 공약을 내걸었다. 부동산 공약에 따라 표심 향방이 갈릴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강남 갑 태구민, 강남을 박진, 강남병 유경준 후보, 서초갑 윤희숙, 서초을 박성중 후보, 송파갑 김웅, 송파을 배형진, 송파병 김근식 후보 8명은 통합으로 부동산 공약을 제시했다. 올해 공시가격 인상 보류, 재산세 및 종부세 개정안 발의 등이 주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내 강남 3구에 출마하는 후보자들 역시 지난 달 27일 종부세 감면 추진 후보자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정책 기조와 다른 방향의 부동산 공약을 내세웠다. 이날 후보자들은 1가구 1주택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강남갑에 출마한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1주택자(만 60세 이상·5년 이상 보유)의 종합부동산세 공제율을 70%에서 80%로 높이고1주택자의 보유세 인상 상한선은 150%에서 130%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공시가격 인상에 따라 급등한 보유세 고지서가 날아올 때쯤에는 아파트 보유자들의 저항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례 없는 경제 위기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사실상 정부가 일방적인 증세를 결정한 셈이어서 세금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반할 소지도 있다”며 “조세 저항이 더 거세지기 전에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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