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까지 내리는 빅컷(big cut·큰 폭의 금리 인하)을 단행하면서 사상 첫 ‘제로(0%대) 금리’ 시대가 열렸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는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하가 아파트 매매가격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강력한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져 매수 심리가 살아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전·월세 시장은 제로금리 시행으로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세입자들은 대출 금리가 낮아져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 반대로 집주인은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다. 결국 전세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면서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세금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대출 규제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 강화로 전세금이 상승하는 가운데 제로금리가 자칫 전세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가 멈춰 세운 아파트값…전세금은 올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59㎡(이하 전용면적) 전세 실거래가는 올 1월 12억원에서 올 3월12억5000만원으로 상승했다. 잠원동 동아(84㎡)와 반포자이(84㎡) 역시 전세금이 한달새 2억5000만원, 1억원씩 올랐다.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센트럴자이 59㎡도 지난달 4억~5억2000만원 선에서 거래던 전세금이 이달 들어 최고가(5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6일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0.44%로, 다소 진정된 듯 보인다. 반면 전세금은 1.11% 올랐다. 특히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 매매가격은 서초구 0.29%, 강남구 0.21%, 송파구 0.20%씩 하락했지만, 전세금은 각각 1.92%, 2.30%, 1.36%로 크게 올랐다. 코로나 사태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줄면서 매매 대신 전세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수요 늘어나는 전세, 공급은 없다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대출 받아 전세로 갈아타려는 월세 세입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출 규제와 경기 침체 등으로 매매를 미루는 수요까지 더해지면 전세 수요가 대거 몰릴 전망이다.
문제는 전세 공급이다. 올해 전세 공급량은 감소 가능성이 높다. 낮은 금리와 높아진 보유세 부담으로 월세 수입을 원하는 집주인이 많아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작년과 비슷한 4만여 가구로 추산되지만 이 중 양도소득세 비과세 거주요건(2년)을 충족하기 위해 세를 놓지 않고 직접 입주하는 집주인도 많다는 것이 현장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결국 수급 불균형으로 전세금이 오르고 세입자 부담이 가중된다. 매매가와 전세금 차이가 줄면 이른바 갭(gap) 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매수 심리 크게 위축…전세 강세 이어질 것
정부의 집중 규제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매수심리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 보유세 부담으로 아파트를 사기보다 전세로 눌러 앉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강남·목동·노원 등지에서는 벌써부터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을 느끼고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을 연장한 것도 전세금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은 주요한 주택 공급 수단인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규제가 심해져 공급 물량이 제한적”이라며 “분양가상한제 시행 연기로 재건축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주변 전세 수요가 급증해 전세금이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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