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작년 말쯤 외지인들이 쇼핑하듯이 물량을 쓸어간 이후로 집값이 뛰고 있죠.”
지난 21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서 만난 박정삼 타임부동산 대표는 “청주 시민들이 뒤늦게 집을 사려고 움직이는데 이미 늦은 거 같다”고 했다.
청주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인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 ‘가경 아이파크 3단지’. 2018년 8월 분양 당시 청약 경쟁률은 5.3대1로 미계약 물량도 나왔었다. 34평형과 40평형 분양가가 각각 3억원, 3억7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웃돈(프리미엄)이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 붙었다. 가경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청주에서 웃돈 1억원 넘는 아파트가 나온 건 처음”이라며 “작년 이맘때까지 미분양을 걱정하던 청주의 상황이 급변했다”고 했다.
2017년 이후 미분양 늪에 허덕이던 청주가 부동산 시장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2017년 7월 3500가구에 달했던 청주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1월 현재 단 225가구만이 남아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500가구 이하로 떨어지면서 40개월 만에 미분양 관리지역 해제 요건도 갖추게 됐다. 최근 분양한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잇따라 이 지역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서울과 수도권·세종·대전 등 외지인 투자자들이 청주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세종·대전은 투자 매력 낮아…청주는 갭투자하기 좋아”
청주 부동산 열풍의 원인은 외지에서 온 투자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청주 아파트 한 달 평균 거래량은 3000건 내외였다. 그런데 11월 들어 4283건으로 급증하더니 12월엔 6878건으로 평균 대비 두 배나 많았다. 특히 외지인 거래인 ‘관할시도 외’ 거래가 급증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한 달 평균 700건 수준이던 외지인 거래량이 11월과 12월엔 각각 1672건, 2172건으로 치솟았다. 외지인 투자 비율은 20% 내외에서 최대 39%까지 높아졌다. 박정삼 타임부동산 대표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과 수도권에서 투자자들이 대거 내려와 이곳저곳 둘러보고 가더니, 9월쯤부터 쇼핑하듯이 매물을 싹쓸이해 갔다”고 했다.
사실 청주에는 철도·도로 등 교통망 개선이나 대규모 지역 개발 사업 같은 큰 호재가 없다. 한마디로 집값이 오를 만한 시장의 구조적 여건, 즉 펀더멘털은 달라진 게 없다. 그렇다면 왜 청주 집값이 난리가 난 것일까.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정부 규제와 과잉 유동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규제 강화 이후 서울·수도권 부동자금이 투자 지역을 찾아 충청권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 그러나 세종시는 대출 규제와 분양권 전매 제한으로 투자 자체가 힘든 상황이고, 대전은 집값이 1년새 30%이상 올라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 결국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분양가보다 시세가 낮고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가 없는 청주가 타깃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청주의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은 70% 수준으로 1억원 이하 소액으로 속칭 갭(gap) 투자가 가능했다. 장기 미분양 사태를 겪으면서 자가 대신 전세 거주자가 많아 전세가율이 높았던 것이다.
청주 아파트 거래량은 인기 주거지로 꼽히는 가경동과 복대동 중심으로 증가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복대동 ‘신영지웰시티1차’ 38평형은 지난해 9월 매매가 3건이었는데 10월 26건, 11월 66건, 12월 45건으로 급증했다. 인근 ‘신영지웰홈즈’ 역시 9월까지 모두 6건에 그쳤던 거래가 작년 4분기에만 17건으로 늘었다. 올 1월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상당구에 152가구, 흥덕구에 73가구가 각각 남아있다. 김종수 지웰시티공인 대표는 “이달 중 청주 미분양 아파트 대부분이 소진될 것”이라고 했다.
■ 신규 분양 열기도 뜨거워…단기 과열 주의해야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청약 경쟁률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지난해 12월 분양한 흥덕구 가경동 ‘가경 아이파크4단지’는 107가구 모집에 9576명이 몰렸다. 청약 경쟁률 89.5대 1을 기록했는데 청주에서 역대 최고 경쟁률이다.
올해 청주에서는 아파트 6000여 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상반기에 동남지구 ‘동양 파라곤’ 562가구를 시작으로 탑동 2구역 재개발, ‘가경동 현대아이파크 5차’ 등이 나온다. 최근 분양한 아파트가 대부분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보여 무난한 분양이 예상된다.
그러나 외지인이 올려놓은 집값 탓에 청주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지인들이 저점에서 매수한 아파트를 한참 오른 가격에 현지 실수요자에게 팔고 떠난 뒤 가격이 떨어지면 실수요자들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외지인이 집중 매입한 아파트에서 전세 물량이 쏟아지는데 세입자를 못 구해 공실이 많다. 복대동 B공인중개사소 대표는 “중개업자 단톡방(SNS 단체 대화방)에서 끊임없이 전세 매물이 올라오는데 수요자는 없다”며 “분양은 됐지만 정작 입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외지인 투자로 당분간 실거래가와 호가의 갭이 클 수 있어 실수요자라면 호가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며 “투기적 거품에 의해 가격이 급등하면 다시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