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어제 ‘깡시장’ 갔더니 주안역 부근 ‘앙팡’은 ‘재료’가 없어서 난리도 아니래유. ‘외국인’들도 엄청 찾는데유.”
지난 24일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공개형 모바일 대화방(일명 오픈카톡방)에 암호문 같은 글이 올라왔다. 알고보니 ‘깡시장’은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앙팡’은 아파트, ‘재료’는 매물, ‘외국인’은 외지인을 뜻하는 은어였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갔더니 아파트 매물이 없다. 외지인도 많이 찾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 온라인 단체카톡방 중심으로 이 같은 ‘부동산 은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온라인을 통해 벌어지는 신종 부동산 시장 교란·불법 행위를 감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다. 땅집고 취재 결과, 모바일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공유하던 오픈 카톡방들이 대부분 이처럼 ‘비밀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은어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 낳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고 지적한다.
■ 정부 단속 예고에 비상걸린 오픈 카톡방
최근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보다는 오픈카톡방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곤 한다. 간헐적으로 특정 지역 ‘임장(현장답사)’을 갈 사람을 모으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정부가 ‘부동산 특별사법경찰’(특사경) 활동을 시작하면서 카톡방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온라인상 미등록 중개행위, 집값담합, 부동산유료강의 탈세, 불법전매 여부 등을 감시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시세보다 현저하게 높은 호가로 광고하는 중개사에게 매물 의뢰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중개사에게 시세보다 현저히 높은 매물을 광고하게 강요하거나 △특정 가격 이하로 중개를 의뢰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행위 등이 단속 대상이다.
‘부동산 카톡방’ 활동 회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자체 검열에 들어갔다. 먼저 부동산 카톡방이 ‘서울 기행’ ‘맛집 기행’ ‘여행 생활’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카톡방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부동산이나 아파트 이름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이들을 가리키는 은어로 대체했다. ‘자이’는 ‘지에스칼텍스’로, ‘래미안’은 ‘에버랜드’로, ‘더샵’은 ‘#’로 대체해 사용하는 식이다. 아파트는 ‘맛집’, ‘재개발’은 ‘뿌셔뿌셔’로, ‘전매제한’은 ‘유통기한’ 등으로 바꿔 부른다.
■ “정상적 정보 교환은 문제 없어…과도한 시장 개입 우려”
정부가 부동산 카톡방 단속에 나선 건 엉터리 정보를 유통하는 시장 교란의 진원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세를 공유하는 척하면서 자기가 보유한 아파트 호가를 마구 올려서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중개사무소 직원들이 수요자인냥 위장해 특정 중개업소나 아파트를 홍보하는 식이다.
’○○○원 이하로 팔지 말자’는 언급이 나오거나 특정 부동산중개사무소을 언급하며 ‘고가로 팔아준다’고 광고하는 등 명백한 불법의 경우 은어를 사용해도 단속 대상이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명백한 담합이 아니라 시세 교란 등 거짓 정보의 경우에도 조사원들이 앞·뒤 맥락을 파악해 종합적으로 봤을 때 불법이 명백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했다.
불법행위 조사는 언급된 지역의 등록 관청에서 하는데, 특사경이 오픈카톡방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톡방에 들어와 있는 누군가가 화면을 캡처해 신고할 경우 단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고 질문을 주고 받는 카톡방은 문제될 것이 없어서 굳이 ‘은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카톡방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빠르고 자유로운 정보 교환이란 순기능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실제 부동산 거래는 정보 전파가 느린데 카톡방을 통해 정부 실거래가 사이트보다 빠른 속도로 실거래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요자들의 투자 판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고가의 컨설팅을 통해서만 공유됐던 양질의 부동산 정보가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수에게 공유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라며 “정부가 불법행위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온라인 상의 빠른 정보 교환에 따른 순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현희 땅집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