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 앞에 고층건물 들어서자 일조량 뚝…법 지켜도 "보상해라"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0.02.06 05:46

[땅집고]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과천주공8단지 아파트 1동은 주택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향이다. 2 년 전까지만 해도 1층부터 14층까지 모든 가구에 하루종일 해가 잘 들었다. 하지만 단지 코 앞에 19층 높이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과천주공 7-1단지 재건축)’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면서 갑자기 전 주택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건물이 올라갈수록 1동 주민들은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었고 결국은 모든 주택에서 하루에 1시간도 해를 볼 수 없게 됐다. 심한 경우 1분도 해가 들지 않는 가구도 있었다. 8단지 주민들은 결국 주공7-1재건축 조합 측을 상대로 공사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땅집고] 지난해 10월, 새로 올라오는 건물 때문에 일조권 피해를 입은 과천시의 한 아파트. / 네이버 거리뷰.


주공7-1단지 재건축조합 측은 “건축법상 규정을 모두 지켜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가처분소송 등 압박이 가해지자 건물 높이를 원래대로 올리는 대신 8단지 주민에게 총 70억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이 금액은 소송에 참여한 85가구에 가구당 위자료 400만원과 손해배상금을 더한 금액이다. 한 가구당 적게는 4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씩 돌아가게 됐다.

일조권은 ‘햇빛 받을 권리’를 말한다. 거액을 두고 다툼을 벌일만큼 법적으로 보장되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다. 주택에 일조량이 부족하면 거주자의 건강이 나빠지고 삶의 질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주택가에 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서면서 일조권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 건축법 다 지켜도 일조권 침해할 수 있다

법이 있음에도 일조권 분쟁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은 근거 법이 되는 ‘건축법’이 일조권을 최소한의 테두리 내에서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법을 지켜 지은 건물이라도 일조권 침해 사례가 나올 수 있고, 법적인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고층 건물 사업 현장에선 일조권이 사업 전체의 리스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일조권과 관련된 건축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건축법 제61조에는 주변 주택에 일조권을 보장하기 위해 건물 간 일정거리를 확보해야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건축법시행령 86조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경우 높이 9m(3층 이상) 초과 건축물을 신축 시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건축물 높이의 2분의 1 이상을 띄어야 한다. 이 법만 지키면 건축 허가를 받는데 큰 문제가 없다.

[땅집고]일조권의 의미와 법원의 판례에서 보장하고 있는 일조권의 범위. / 서울시


하지만 일조권 침해 소송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더 넓은 기준으로 일조권을 판단한다. 법원 판례를 보면 대체로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9시에서 15시 사이에 연이어 2시간 이상, 하루에 일조량을 모두 합쳐 4시간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조권 침해로 본다. 이 때문에 사업자가 건축법을 모두 지켜도 일조권 분쟁을 피할 수 없다. 법원은 일조권 침해에 대해 건축법 위반여부 뿐만 아니라 피해자 측이 받은 침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사람이 참고 넘길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게 되는 한도(수인한도)인지 따져 사법상의 가해 행위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건축 허가와 관련한 법만으로 일조권 침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어렵고 일조권 분쟁을 해결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승태 법무법인 ‘도시와 사람’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일조권의 본질을 재산권과 인격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일조권 침해의 대가로 집값 하락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다”며 “하지만 건축허가는 건축법을 근거로 해 담당구청이나 주변 주택가 주민, 건축주 등이 일조권 침해 우려가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완벽히 인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 일조권은 주거지역에만 적용…도시 곳곳에 분쟁 씨앗

또한 건축법상 상업지역에 짓는 건물은 주거지역에 들어서는 건물들과는 달리 일조권이나 조망권을 확보할 의무가 없다. 법원도 주거지역을 벗어나면 일조권 적용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특히 상업지역 같은 곳에는 일조권을 규제가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업지역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는 주거시설이 대규모로 들어가기 때문에 법원도 상업지역이라고 해서 일조권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땅집고]창을 열기 힘들 정도로 바싹 붙어있는 해운대구의 두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대표적으로 해운대에 ‘딱 붙어있는 아파트’로 유명한 주상복합 아파트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두 주상복합은 모두 상업지역에 들어섰는데, 건물간 거리가 1m도 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선 건물의 건축허가를 내준 해운대구청은 일조권 때문에 한 차례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하기도 했지만, 사업주가 상업지역에서는 일조권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결국 허가를 내줘야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두 아파트 주민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주택을 매입하거나 건축할 때는 이렇게 고층 건물이 들어설만한 땅이 주변에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만약 구입한 땅 옆으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선다면 주택 건축시 창문의 위치에 유의해야 한다.

■ 현행 판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안전하다

일조권 침해를 받을 경우, 가해 건물의 골조공사가 시작되기 전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통해 이의를 제기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고층 건물을 짓는 사업주 측에서는 공사중지 가처분 결정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피해를 보상해준 등 합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건물이 다 올라간 상태라면,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일조권 피해로 인한 재산가치 하락분을 보상받을 수 있다.

[땅집고]전문가들은 일조권에 대한 판단은 건축법보다는 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 pixabay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일조권의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이나, 고층건물을 지으려는 사업주 모두가 건축법이 아닌, 판례에서 적용되는 수인한도를 넘어서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법무법인 아시아 변호사는 “주거지역에서 일조권은 삶의 질에 관한 규정이기 때문에 법규를 지켜서 건축허가를 받았더라도 주변 건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다 없어지지 않는다”며 “건축주는 판례상의 수인한도를 기준으로 주변 주택가 일조량을 해치지 않도록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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