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강동구에서 강남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딘줄 아십니까. 바로 천호동입니다. 천호동이 청량리처럼 뜨지 말란 법이 있나요. 여기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 고층 주거단지가 들어서면 완전히 바뀔 겁니다”(차지원 천호푸르지오 공인중개소 대표)
지난 23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역(5·8호선)으로부터 400m쯤 떨어진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공사 펜스가 나타났다. ‘2001 아울렛’ 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터파기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지난 10일 기공식을 연 ‘천호재정비촉진지구 2구역’이다. 2022년 7월쯤에는 ‘천호재정비지구’ 4개 구역 중에서 첫 번째로 이곳에 지하 4층~지상 20층 규모로 188가구 아파트가 들어선다. 인근 주민 50대 A씨는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했지 이렇게 진짜로 바뀔 줄은 몰랐다”며 “성매매 집결지가 언제 사라지나 싶었는데, 펜스가 세워지고 공사가 시작되는 걸 보니 말그대로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서울 강동구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천호동 일대 재개발 사업이 정비구역 지정 14년만에 첫 삽을 떴다. 속도가 가장 빠른 2구역부터 순차적으로 총 4개 구역 24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 교통과 입지 면에서 강남·강북 접근성이 모두 좋고 상업·문화 인프라도 빠지지 않고 갖춘 지역이라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오는 3월말쯤 약 100가구가 일반 분양할 예정이다. 현지에서는 강동구 최고가인 고덕동 일대 아파트나 지난해 강북 청약 시장의 스타였던 청량리 못지않게 인기가 높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 집창촌 영업 사실상 종료… 한강 조망 가능한 주상복합 들어선다
2구역과 맞닿아있는 1구역은 아직 옛 천호동 텍사스촌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다. 이날 1구역 내 일부 건물은 펜스가 처져있고 점포와 성매매업소에는 ‘공가’, ‘경고문’ 등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1월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현재 90% 정도가 이주했다. 한 단독주택에서 이삿짐을 나르던 직원은 “이곳 업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해 거의 다 떠났다"며 "2년 전 화재 사고를 계기로 이주 속도가 빨라졌다"고 했다. 성매매업소는 한때 51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5~6곳 정도만 남아 있다.
1구역은 천호재정비사업지 중 면적이 가장 넓고 규모가 크다. 천호시장과 천호신시장, 족발골목 등 대형 재래시장과 집창촌의 70%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내년쯤 공사를 시작해 1000가구 규모 40층 높이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코오롱아파트와 현대프라자를 묶어 재개발을 추진하는 4구역도 1월 초부터 이주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3구역은 올해 6월쯤에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3구역과 4구역도 올 연말~내년 초쯤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 천호동 집값 오름세… 낡은 아파트 많아 신축 기대감 높아
천호동은 강남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새 아파트가 많지 않은 지역이다. ‘래미안강동팰리스(2017년 7월 입주·999가구)’나 ‘강동역신동아파밀리에(2015년 8월 입주·230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낡은 아파트가 많다. 두 아파트는 지난 1년간 매매가가 평균 1억5000만~2억원 정도 뛰었다. 래미안강동팰리스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7월 11억원에 거래됐지만, 12월에는 12억5000만원에 매매 거래가 이뤄졌다. 천호동 B공인중개소 대표는 “두 아파트의 경우 8호선 강동역 하나만 끼고 있는데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신축아파트는 5호선과 8호선이 다니는 천호역 더블역세권이라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 개 구역 중 투자자의 관심이 가장 많은 지역은 규모가 큰 재개발 구역인 1·4구역이다. 1구역은 999가구 가운데 530가구가 일반분양이다. 1구역의 조합원 평당 분양가는 평당 2000만~2200만원 수준. 일반 분양가는 2400만원에서 최대3000만원선으로 예상한다. 1구역은 현재 대부분 상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상가(1호당 5~6평)는 통상 5개 정도가 1개 물건으로 거래되는데, 현재 가격은 16억원 안팎이다. 지역 중개업소에선 이 정도 규모의 상가를 매입하면 조합원 물량으로 25평과 35평 아파트 두 채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구역은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이곳은 주택형에 따라 추가 분담금을 포함해 투자금이 각각 8억5000만원(20평대), 10억원(30평대) 정도 수준이다. 인근 중개업소에선 “천호동 아파트 시세나 예상 일반 분양가를 고려하면, 입주 무렵에는 3억~5억원의 차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고덕·상일 지구 집값 따라 잡을까? ‘학군’이 걸림돌
천호동은 강동구에서 강남과 가장 가깝고 교통·상권이 가장 발달한 지역인데도 낡은 주택과 집창촌이 몰려 있어 우수한 주거지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박상언 유엔알 컨설팅 대표는 “통상 서울이나 경기도 집값은 강남이 가까운 지역일수록 비싼데, 강동구는 예외적으로 외곽 지역인 고덕·상일동이 집값이 비싸다”며 “하지만, 강남과 가까운 천호동 새 아파트 입주 시점인 2023년 이후부터는 강동구 집값을 주도하는 지역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천호동 일대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도 '학군'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힐 것으로 예상된다. 집창촌이 번성했던 지역이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부족한데다 고등학교는 사업지 반경 1km 내로 없다. 영파여고(1.1km)를 제외하면 2km가량 떨어져있다. 신축 아파트라도 젊은 사람들이 들어설 요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천호동 C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강동구 학군은 이미 명일동에 형성돼있다”며 “천호동에 입주하는 가구수가 2400여 가구에 불과해 새로운 학군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