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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하나같이 닮았네" 판교 단독주택촌에 숨은 비밀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19.12.24 05:26 수정 2019.12.24 07:51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동 공원 끝자락에 있는 단독주택촌을 찾았다. 동판교와 서판교 일대에는 2층 높이 단독주택들이 약 1000여 가구 규모로 늘어서 있다. 집 한 채당 평균 20억원 내외를 호가하는 부촌이다.

주변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아파트 단지가 함께 있어 학교·상가 등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조용한 주택가다. 인기있는 연예인들이나 재벌가에서 부지를 사들여 유명해졌고, 실력있는 건축가들이 실력을 발휘하는 장으로 삼으며 단독주택 부지 중 손꼽히는 장소다.

그런데 이 골목을 걷다보니 단독주택촌 치고는 집들의 형태가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외벽이 마치 성벽처럼 유난히 높고 벽에 창이 아예 없거나 아주 작게 나 있다. 그나마 난 창은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모두 가려져 있었다.

판교 운중동 단독주택촌 길가. / 김리영 기자

도로와 접한 어떤 집은 창문 앞에 아예 나무를 심어서 바깥에서 절대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한 곳도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은 조성 될 때부터 담장을 1.2m 이상 만들 수 없게 법으로 규제한 바람에 담장이 없다”고 했다. 담장이 없다보니 사생활 보호를 위해선 창문을 크게 만들 수가 없고, 나무 등을 심어 가린다는 것이다.

온라인 상에는 판교 단독주택 부지를 둘러본 사람들이 “창문을 열기도 힘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 곧바로 마주칠 것 같다”, “아파트 1층과 별 차이가 없어보인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 이웃과의 교류를 위해 없앤 ‘담장’…되레 높아진 외벽

판교와 같은 2기신도시의 경우 조성 초기부터 지구단위계획이 도입돼 단독주택 건축물에 대해 각종 규제가 적용됐다. 담장이 없는 것도 이런 규제 때문이다.

외부에 창이 작게 나 있고 대부분의 집에 담장이 없다. / 김리영 기자

판교 단독주택 부지의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을 살펴보면 담장과 대문의 높이는 1.2m를 넘지 못한다. 또 담장의 재료는 화관목(花灌木)류의 생울타리여야 한다. 이 때문에 건축주들은 외벽을 담장처럼 사용하고 천창을 내거나 정원을 집안 한 가운데 두는 중정형 구조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교에는 외벽이 높게 솟아있고 중앙이 뚫린 집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내부가 뻥 뚫린 중정형 집이 많은 판교 단독주택 단지. / 네이버 항공뷰


■ 의도는 좋았으나…특색 사라진 단독주택촌

2기 신도시 조성 즈음부터 형성된 단독주택촌은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담장 규제를 가지고 있다. 세종시 단독주택은 판교보다 규제가 더욱 엄격하다. 단독주택의 담장은 0.8m이하로, 재료는 목재나 자연석·생울타리 같은 자연 재료만 쓰도록 했다. 철재 등 인공 재료를 쓴다면 색을 세종시 지침으로 정한 ‘세종 웜 다크 그레이 톤’으로 통일해야 한다. 위례신도시는 담장 높이는 판교처럼 1.2m 이하로 동일하지만 친환경 소재이기만 하면 딱히 재료 규제가 없다.

문제는 건축주가 담장의 기능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 형태가 어느 신도시나 비슷비슷해졌다는 것이다. 판교동에사는 한 주민은 “소통을 위해서 담장을 낮추라고 했지만 단독주택 촌을 지나다보면 벽을 높게 쌓아올린 성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종시 길마당 마을 예상 조감도. / 세종시

김형섭 마고퍼스 대표는 “규제가 만들어진 좋은 의도와 달리 주인이나 건축가의 창의성을 발휘한 특색있는 건물을 만들기 어려워지는 단점도 나타나고 있다”며 “전원 생활을 꿈꾸고 판교 등에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매각하는 건축주도 더러 봤다”고 했다.

■ 세세한 규제보단, 건축주가 원하는 집 짓게 법 바꿔야

신도시 별로 담장뿐만 아니라 지붕의 색깔이나 각도, 내부 구조까지 규정한 곳도 있다. 세종시의 한 단독주택 단지는 지붕의 형태와 각도, 색상 등을 세세하게 규정했다. 이곳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설계안에 따라 단독주택의 유형을 4개로 분류했고 2층에 주방이 있는 본채와 1층 별채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또 ‘ㄱ’자 혹은 ‘ㄷ’자 등으로 중정의 모양까지 규정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 시가지에 있는 단독주택 건물의 단점을 보완해 법을 적용한 측면이 있고, 도시 콘셉트에 맞게 아파트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만큼 단독주택도 일정 부분 도시와 어울리게 관리하도록 하는 목적이 크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지침들이 허용한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Positive)의 규제로,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승이 유하우스건축사무소 소장은 “단독주택의 이상적인 모습을 하나만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수요자들이 원하는 생활 여건을 고려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 당국이 수요자들의 요구를 따라잡기가 어려운만큼 정말 필요한 몇 가지 외에는 최대한 건축주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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