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해리단길' 떡하니 막은 의문의 펜스…"우리 좀 살려주세요"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12.23 06:03 수정 2019.12.26 11:12

[땅집고]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상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속칭 ‘해리단길(해운대구 우동 일대)’. 낡은 건물에 특색있는 카페나 식당이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에게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특히 해운대역 북쪽 골목길에 지은 지 40년쯤 된 ‘우일맨션’은 해리단길의 시초로 평가된다. 이 건물 1층에 입점한 일본 파운드케이크 전문점 ‘모루과자점’, 유부초밥집 ‘호키츠네’, 말차 전문점 ‘하라네코’ 등 3곳은 부산은 물론 전국구 스타 점포로 유명하다.


[땅집고]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리단길 상권에 있는 '우일맨션' 1층이 성인 키 높이만한 펜스에 가려져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땅집고] 우일맨션 상인들은 건물과 펜스 사이 간격이 너무 좁아 점포 문을 여닫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그런데 올 10월 우일맨션 점포 3곳 상인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통유리로 마감한 1층 상가 전면부를 통째로 가리는 성인 키 높이만한 가림막이 설치된 것. 천으로 만든 이 펜스 때문에 길에서 이 상가를 전혀 볼 수 없게 됐다. 건물과 펜스 사이 거리도 고작 65cm. 손님들이 가게를 드나들기에는 너무 좁다. 심지어 가게 문을 여닫기조차 힘겹다.

‘호키츠네’ 관계자는 “펜스가 생긴 후 2주만에 하루 매출액이 주말 기준 130만원에서 80만원으로 50만원(약 38%) 줄었다”며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우일맨션 주민들은 “펜스 때문에 건물 출입이 어려워 철거를 요구했더니, 통행료로 가구당 126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땅집고] 천으로 된 펜스가 설치된 우일맨션. 도로에서 1층 상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호키츠네 SNS


[땅집고] A사가 경매로 사들인 우일맨션 앞 자투리 토지. /밸류맵 캡쳐


문제가 된 펜스를 설치한 건 A개발업체다. A사는 지난 9월 우일맨션 앞 토지 27㎡(약 8평)가 경매에 나온 것을 발견하고 1억5000여만원에 낙찰받았다. 2003년 해운대구청이 도로를 낼 때 미처 매입하지 ㅁ못한 자투리 땅이다. A사는 펜스에 ‘이 토지는 사유지로서 원상복구 및 건축공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펜스 및 게시물 훼손 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습니다’라는 경고문을 붙여놨다.

[땅집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우일맨션 알박기를 막아달라는 청원도 올라와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땅집고] A사가 경매로 낙찰받은 해리단길의 또 다른 자투리 땅 2곳. /밸류맵 캡쳐


우일맨션 주민들과 상인들은 A사가 ‘알박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알박기란 개발 지역 땅을 일부 사들인 뒤, 사업자에게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되파는 부동산 투기 수법을 말한다. 실제로 A사는 우일맨션 앞 부지 외에도 해리단길에 있는 땅 2필지를 경매로 매입했다. 각각 11㎡(낙찰가 5788만원), 28㎡(낙찰가 1억4800여만원) 규모 자투리땅이다.

[땅집고] 건물 위에서 내려다본 우일맨션 앞 펜스와 A사 보유 토지.


우일맨션 상인들은 A사를 교통방해 및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A사는 “땅 소유권을 알리기 위해 펜스를 설치했다. 해당 점포 영업을 방해하고 주민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승주 변호사는 “교통방해죄는 불특정 다수가 통행하는 공공성을 띤 장소에 통행하는 것을 부당하게 막았을 때 적용된다”며 “통로를 이용하는 주요 대상이 우일맨션 주민과 상인이고, 통로가 비좁긴 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교통방해죄 성립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그럼 업무방해죄는 인정될까. ‘토지 소유자가 본인 토지 위에 공작물을 설치한 행위가 인근 건물 소유자의 건물 사용 수익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공작물 철거를 요구하는 방해제거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2014다42967). 다만 해당 판결은 땅주인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의도로 공작물을 설치했다는 전제를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우일맨션 상인들이 재판에서 A사의 의도를 입증해내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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