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올 8월 준공한 지상 5층 상가주택. 한쪽 외벽에 지상 1~2층에 걸쳐 낸 커다란 통유리창이 눈길을 잡아끈다. 이뿐 아니다. 꼭대기 층까지 외벽 곳곳에 크고 작은 창문이 30여개 나 있다. 밤에 불을 밝히면 건물 내부 조명이 밖으로 퍼져 마치 가로등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이 집은 정승이〈사진〉 유하우스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설계했다. 그는 "곳곳에 뚫린 창이 상대적으로 좁은 대지 면적(193㎡)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어두운 길거리에서 시선을 끈다"며 "워낙 눈에 띄는 건물이다 보니 인근 건물주나 세입자, 자영업자들이 문의를 많이 한다"고 했다.
최근 돈 굴릴 곳이 마땅찮은 중장년층이 노후 대책으로 이른바 상가주택에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공급 증가와 경기 침체로 공실(空室) 우려도 적지 않다. 상가주택 건축 30년 경력 정 소장은 "결국 기획과 설계가 성패를 가른다"고 말한다. 그는 "잘 지은 건물 자체가 1층 상가의 얼굴이 되고, 1층에 들어선 좋은 상가가 2~3층 주택의 가치를 더 높인다"고 했다.
◇상가보다 주택 부분 설계가 더 중요
상가주택은 상가이면서 주택이기도 한 특수 건물. 그러나 건축주는 상가 임차료에만 관심을 갖는다. 임차료를 더 받기 위한 목, 즉 입지(立地) 선정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정작 건축설계에는 소홀하다. 정 소장은 "입지만큼 중요한 것이 설계, 특히 상가보다 면적을 더 많이 차지하는 주택 설계"라고 했다.
문정동의 5층 상가주택은 주택 설계에 방점을 둔 사례다. 건물주가 사는 4~5층은 누구라도 혹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구조를 도입했다. 방문을 슬라이딩 도어(미닫이문)로 설계하면서 문 앞에 붙박이장을 넣어 보관 공간을 넓혔다. 어린 자녀가 맘껏 노는 다락방 복층(復層)도 만들었다. 결국 주인이 사는 공간의 가치가 건물 전체 가치를 좌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세를 준 지상 2층 주택(2실) 설계도 마찬가지다. 정 소장은 "입구부터 내 집 같은 느낌이 들도록 동선과 출입문 위치를 디자인한다" "임대 가구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중문을 단다" 같은 원칙을 이 집에 적용했다. 세입자가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면서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들이다.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큼 잘 지어라"
잘 지은 상가주택은 주변 수요를 끌어들이고 결국 동네 전체의 가치까지 높인다. 정 소장은 "건축주 대부분은 주변에 상권도 없고 슬럼화돼서 걱정이라고 말한다"면서 "정작 개발을 통한 수익성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했다.
낡은 골목에 잘 지은 상가주택 한 채가 들어서면 주변 주택들이 서서히 변하고, 결국 동네가 탈바꿈한다. 어두운 골목이지만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상가주택이 2곳만 생겨도 골목 전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손님들이 모이면 결국 동네 전체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다. 그는 "서울 연희동이나 성수동은 건축주의 자발적 노력으로 상권이 살아났다"며 "이렇게 바뀌는 동네 분위기는 그 동네만의 강력한 스토리가 된다"고 했다.
정 소장은 "잘 지은 주택 하나가 주변 주택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엔 5년 정도였다면 요샌 3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고 했다. IT(정보기술) 발달로 잘 지은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소비자도 '동네의 스토리'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저층 건물이 많아 30~40년만 돼도 철거하고 새로 짓던 과거와 달리 요즘 상가주택은 법정 용적률을 꽉 채워서 짓다 보니 재건축이 어렵다"고 했다. 한번 지으면 100년 동안 쓸 건물인 만큼 지을 때 잘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상가주택 성공 지름길을 이렇게 요약했다. "간단합니다. 그 지역에서 최고로 잘 지으세요.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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