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정부가 때리고 옥죄니…서울 아파트 매물 씨 말랐다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9.12.12 06:19

[땅집고] “아니 지난주만 해도 13억원이라더니…. 5000만원이나 올리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6일 직장인 K씨(43)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4단지) 전용 59㎡ 매물 시세를 알아보다가 까무러칠뻔 했다. 그는 “지난달 말에 공인중개사 통해서 13억원짜리 매물을 소개받고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불과 1주일도 안돼 5000만원이 올랐다고 하니 기가 막히다”고 했다.

사실 이 아파트 전용 59㎡는 올 11월에 12억4500만원에 팔렸다. 이 아파트 준공 이후 전용 59㎡로는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이후 매도 호가가 13억원으로 치솟으면서 거래가 한 달 가까이 끊어졌다가 최근 13억원에 계약한 사례가 등장한 것. 아현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실거래 사이트에 등록하지는 않았지만 13억원에 팔린 걸로 알고 있다”며 “이제는 매도 호가가 13억 5000만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최근 서울지역 아파트 시장에 이른바 ‘매물 잠김’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이나 마포·용산·성동구 등 인기 지역에서 단지별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매도 호가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문제는 실수요자나 추격 매수자 1~2명이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매메계약 체결을 하면서 단지마다 역대 최고가 경신 사례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집주인과 매수인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매물 부족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칫 다시 한번 큰 폭의 가격 상승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서울 월간 거래량 8000건→2000건…매물 품귀

[땅집고] 올 서울 아파트 월간 거래량. 지난 11월 거래량은 신고가 끝나지 않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1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205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1월(1718건), 2월(1454건)을 제외하면 가장 적다. 지난 8월(6604건), 9월(7007건), 10월(8615건) 석 달 연속으로 증가하다가 4분의 1 이하로 급감한 것이다.

[땅집고] 올해 서울 월간 아파트값 변동률. /한국감정원


대개 거래량이 줄면 가격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상황은 정반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 서울(0.44%→0.50%)과 수도권(0.27%→0.35%)의 주택가격 상승 폭이 확대됐다. 서울 집값 상승률은 14개월만에 최대치였다.

거래량은 급감하는데 가격은 치솟다보니 거래가 한 건 성사될 때마다 신고가가 바뀌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전용 84㎡ 21억8000만원),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전용 84㎡ 18억원),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전용 59㎡ 13억3000만원), 성동구 옥수동 옥수파크힐스(전용 59㎡ 12억6500만) 등 최근 신고가를 기록한 아파트가 부지기수다.

■ 양도세 부담에 못 판다…다주택자 ‘퇴로’ 열어줘야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수천만원씩 높여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정임 금호파크힐스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정부가 공시가격과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동시에 높이면서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주택자들에겐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 부담이 보유세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크다”고 했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소 매물 목록을 바라보는 손님. /조선DB


문제는 정부가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매물 잠김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점점 더 집을 팔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먼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발표했다. 양도세 부담을 늘려 다주택자가 집을 팔도록 유도하기 위한 계산이 깔린 정책이다. 조정대상지역에 대해 양도세율을 중과(2주택자 10%포인트, 3주택자 20%포인트 각각 가산)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을 유도한다면서 엉뚱하게도 ‘임대주택 양도세 중과 면제’ 정책이란 상반된 정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9·13대책 이후로 유(有) 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새로 주택을 취득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없지만 이전에 취득한 주택은 새로 임대등록하면 종부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제외 등 혜택을 계속 유지시켜 준 것이다.

두 정책이 결과적으로 임대 등록된 주택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 이른바 ‘매물 잠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처음 약정한 임대의무기간(4년 또는 8년)을 지키기 못하면 그동안 받은 세제 혜택을 반납하고 과태료(최대 3000만원)까지 내야 한다. 현재 서울시내 주택 370만 가구 중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것만 47만 6000 가구(12.8%)에 달한다.

또 다른 규제도 주택 시장에 매물이 나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년부터 1주택자도 양도세 비과세를 받으려면 2년 거주 요건을 채워야 하는 것. 이 요건을 채우지 못하면 세금 부담 탓에 또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매물 잠김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매물이 워낙 없다보니 아파트 1~2채가 비싸게 거래되면 전체 주택 시세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결국 주택 거래 정상화를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부담이 큰 집주인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특정 기간과 요건을 정해 놓고 다주택자 등을 대상으로 양도세 중과 완화 같은 출구 전략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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