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작년 말 전국의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중·대형 기준 10.8%)로 치솟았다. 곳곳에서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땅집고는 ‘벼랑 끝 상권’ 시리즈를 통해 몰락하는 내수 경기의 현실과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일곱 번째 현장으로 라베니체를 찾았다.
[벼랑 끝 상권] 간판보다'임대문의' 현수막이 많은 김포 한강신도시
지난 22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기동. 경전철 김포골드라인 장기역 5번출구로 나와 15분쯤 걸으니 2층짜리 건물 수십 채를 일렬로 배치한 형태의 상가 ‘라베니체’가 나왔다. 라베니체는 총 길이 1.7km의 인공수로를 따라 지은 대형 수변 상가다. 총 400여실로 지어질 계획이다. 현재 상가를 이루고 있는 9개동(棟) 중 2014년 분양해 가장 먼저 완공한 1차 상가에 들어가봤다. 상가 중 가장 인기가 있는 1층인데도 28곳 중 13곳이 비어 있었다. 빈 점포마다 ‘임대문의’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2층 상황은 더 심각했다. 해물보쌈집, 묵은지 김치찌개집, 필라테스 학원 등이 이미 개점을 했다가, 장사를 접고 가게를 내 놨다. 1차 상가 뿐 아니라 이후에 분양한 2~7차 상가들 사정도 비슷했다. 수로변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동네 주민들을 제외하면 이날 라베니체 상가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선 “지금까지 7차까지 분양한 라베니체가 문을 연지 4년째인데도 상가 절반 정도가 비어 있는데, 앞으로 13차까지 분양 한다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포한강신도시에는 라베니체와 마찬가지로 스트리트형 상가로 지어진 운양동 ‘라비드퐁네프’, 구래동 ‘카림애비뉴’ 등이 있는데, 이들 다른 상가 상황도 비슷하다. 1층 상가 기준으로 한두 곳 걸러 한 곳은 빈 점포로 남겨져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 상가들이 일제히 ‘공실 폭탄’을 맞게 된 이유가 뭘까.
■‘베드타운’이라 평일에 장사 안되는데…상가는 이미 포화 상태
전문가들은 한강신도시가 본격 개발되면서 상가가 너무 많이 공급된 것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한강신도시의 1인당 상가면적은 8.7㎡다. 다른 수도권 신도시인 별내(5.35㎡), 미사(4.72㎡), 위례(3.59㎡) 등을 웃도는 수치다. 최근 상가 공실률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세종시(8.07㎡)보다도 상가 공급량이 더 많다.
한강신도시가 ‘베드타운’인 점도 상가 공실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줬다. 한강신도시는 서울까지 지하철로 20분(운양역~김포공항역 기준) 정도면 닿는 최근접 택지지구다. 한강신도시는 별다른 자족기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가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다. 평일 오전과 오후 내내 출퇴근 인구가 서울로 머물면 한강신도시 상가들은 그야말로 텅 빌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
장기동 라베니체 A카페 근무자는 “주말에는 주변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종종 방문하곤 하지만, 평일에는 매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 열 명도 안된다”라며 “지금보다 날씨가 추워지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월세 반 깎아도 세입자 못구하는 상가 수두룩…앞으로도 분양 물량 남아 있어
침체기를 맞은 김포 한강신도시 상가 임대료는 점점 낮아지는 분위기다. 장기동 라베니체의 경우 첫 입주 시기인 2015년에는 15평짜리 1층 상가 임대료가 300만원, 2층 상가가 250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기존보다 월세를 100만~150만원 낮춘 점포들이 매물로 나와 있다. 첫 계약 후 1~3달 정도는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 프리’ 혜택을 준다는 투자자들도 수두룩하다.
장기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상가 투자자들이 대출 이자를 겨우 낼 정도로만 월세를 낮췄다”라며 “그런데도 다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원래 신도시에 분양하는 상가들은 공실률이 높게 나타나는 편인데, 최근에는 경기 침체까지 겹쳐 상황이 악화됐다”라며 “스타필드나 코스트코 등 모객력이 강력한 브랜드 쇼핑몰이 아닌 이상, 적극적·체계적으로 MD 구성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