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값 폭등하자 파격 카드 꺼낸 베를린 "임대료 5년 동결"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9.11.18 06:48

[땅집고] 독일 베를린시가 내년 1월부터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 서울은 물론 뉴욕·파리·홍콩 등 주요 대도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베를린 역시 젊은 층의 주택 문제가 심각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젊은 층이 급여로 집값 상승세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베를린도 폭등하는 주택 임대료 탓에 젊은 층이 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태가 발생하자 과격한 법안을 내놓았는데 시장 경제에 역행하는 조치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주도로 전세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추진을 발표했다. 전월세 인상률 한도를 정하는 ‘전월세 상한제’도 논의하고 있다. 베를린시가 도입한 임대료 동결 조치는 이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정책이어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베를린 시 정부는 지난달 22일 ‘베를린시 주택임대료 법안’을 처리했다. 내년 1월부터 발효될 것으로 보이는 이 법은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약 150만 가구)에 대해 법안 초안 발표일인 6월 18일 당시 임대료를 기준으로 5년간 주택 임대료를 더 인상할 수 없도록 했다. 2022년부터는 물가상승률(약 1.3% 예상) 정도만 인상을 허용한다.

[땅집고] 독일 베를린시가 내년부터 5년동안 임대료를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사진은 베를린 시내 주택가. /픽사베이


앞으로 새로 임대차계약을 맺는 세입자는 임대료 상한선 이하로 집을 구할 수 있다. 2013년 당시 평균 임대료 인 1㎡당 9.8유로(약 1만2500원)가 임대료 상한선이다. 임대인이 이를 어기면 벌금으로 무려 50만유로(6억2000만원)를 내야 한다. 2014년 이전에 지은 주택의 기존 임대차계약도 이 상한선의 20% 이상은 부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는 2008년 이후 치솟았다. 이 기간 주택 매매 가격은 3배로, 임대료는 2배 이상으로 뛰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전체 시민의 84%인 세입자들이 임대료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시의 임대료 동결 조치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가격 통제 부작용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이뤄져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레베카 다이아몬드 등)이 샌프란시스코 주의 임대료 통제 정책의 효과를 분석한 2018년 연구가 대표적이다.

[땅집고] 베를린에 사는 무주택자들은 임대료 억제 정책을 환영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픽사베이


샌프란시스코 주는 1979년부터 임대료 통제 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그 대상을 확대했다. 연구진이 1995년의 임대료 통제 확대 효과를 분석한 결과 임대료 통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이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대신 매각하거나 임대료 상한을 피할 수 있는 소형 아파트 등으로 재건축하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샌프란시스코는 1995년 임대료 통제 확대 정책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15% 감소했다. 장기적으로 임대료 통제 대상이 아닌 주택의 임대료가 더욱 높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 연구진은 “1994년 이전 임대주택에 살고 있던 임차인들에게는 혜택을 줬지만 나머지 임차인들에게는 해를 끼쳤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비용을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고 말했다. 독일 에를 랑겐 뉘른베르크 대학교와 베를린 경제연구소가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레오니드 버시드스키는 “베를린의 임대료 통제 정책은 동독의 공산당 정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독일 정치인들은 집을 구하지 못할 미래 세입자보다 당장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 줄 수 있는 84%의 세입자를 더 신경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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