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정부가 사실상 간접적으로 아파트 분양 가격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까지 분양가 통제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는 ‘분양가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기업의 아파트 분양을 가로막았다. 국토교통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동원해 “분양 보증 위험을 관리한다” 명분을 앞세워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은 일반화됐지만, 지자체가 직접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고양시는 정부가 최근 확대 도입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도 아니다.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사유 재산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과 지자체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6일 고양시와 능곡 1구역 재개발 조합에 따르면 고양시는 지난달 28일 능곡 1구역에 짓는 ‘대곡역 두산위브’ 아파트의 입주자모집공고를 불승인했다. 이달 5일 첫 번째 신청이 반려된데 이어 두번째다.
분양 승인 불허 이유는 분양가가 높다는 것이다. 조합은 앞서 HUG로부터 3.3㎡(1평)당 1850만원의 분양가로 보증서를 발급받고 1차 분양승인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가 분양가가 비싸다며 반려하자, 지난 18일 분양가를 1790만원으로 낮춰 재신청했다. 하지만 고양시는 “3.3㎡ 당 1611만원 수준으로 낮추라”면서 승인을 거부했다.
고양시는 공식적으로는 ‘자문위원회의 결정’을 따른다는 입장이다. 이재학 고양시 재정비촉진과장은 “올해 초부터 한국감정원이 사업성 검증을 벌인 결과, 분양가 1608만원이 적정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당시 조합은 1695만원을 제시했다. 시가 재차 자문을 거쳐 1611만원이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기초 지자체가 직접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유사 사건 판례를 보면 지자체의 월권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2006년 시행사인 드리미가 충남 천안 불당·쌍용동에 아파트 297가구를 3.3㎡당 877만원에 공급하겠다고 분양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천안시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 산정한 655만원에 맞출 것을 요구하며 입주자모집공고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당시 대전지법 행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등을 통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이는 공공택지 안에서 감정가격 이하로 택지를 공급받아 건설 공급하는 공동주택에 한정돼야 한다”며 “입주자모집 승인 제도를 통해 분양가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반면, 조합의 분양가 책정이 명확히 잘못됐다면 분양 승인을 거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법적으로 분양 승인은 요건만 갖추면 당연히 효력을 갖는 재량행위가 아니라 승인이 필요한 귀속 행위”라며 “인근 지역보다 분양가가 과도하게 높다면 분양 승인을 거절하는 것이 지자체의 정당한 권한”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행을 앞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취지를 고려해도 이번 규제는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29일 시행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투기과열지구 가운데 집값 상승률이 높거나 청약과열지역, 주택거래량이 많은 곳 중 필요한 곳을 분양가상한제 대상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인 대상 지역은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 집값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민간 사업이라고 해도 분양가를 통제할 수 있지만 그 범위는 법과 규정에 맞춰 제한해야 한다는 뜻이다.
능곡 1구역 조합은 지난달 24일 감사원에 첫 불승인에 대해 감사청구를 접수했고, 앞으로 고양시를 상대로 행정소송과 행정심판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아파트 인허가 과정에서 지자체가 분양가를 일부 조정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번처럼 승인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분양가가 높다는 이유로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면 과도한 간섭으로 주택 공급이 더욱 위축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