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이달부터 서울 지역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이 잇따라 시작되는 가운데 건설사들의 수주전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규제로 정비사업 자체가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높은 대규모 정비사업 수주에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시공비만 1조8000여억원에 달하는 용산구 한남3구역에서는 사업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상대방 건설사에 대한 비방 선전물도 나돈다. ‘사업 지연! 사업 중단! A 건설사를 택하면 꿈이 악몽이 된다’ ‘B 건설사를 선택하면 재무 건전성 불안으로 사업 지연 우려’ 등이다. 일부 건설사는 300명에 달하는 홍보 요원을 투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앞서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수주 과정에서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한 향응 제공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과 해당 사업장에 대한 시공권이 박탈될 수 있고, 해당 시·도 정비 사업에 2년간 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금품·이사비 등 직접적 금전 제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분양가 보장, 이주비 지원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조합원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GS건설은 조합원에게 일반분양가 3.3㎡당 7200만원의 고분양가를 보장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강남 주요 사업장 분양가가 5000만원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건설사 측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고, 인허가 당국의 승인을 받은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현대건설은 가구당 최저 이주비 5억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대림산업은 임대아파트가 전혀 없는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사들은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이른바 ‘대안 설계’를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사업시행계획 인가 이후에는 대대적인 설계 변경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30일 ‘공공관리 시공사 선정 기준’을 개정 발표하면서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사업자가 조합의 기존 설계를 수정한 ‘대안 설계’를 제시하는 경우 ‘경미한 설계 변경’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이에 따르면 건설사가 기존 설계안을 바꾸려고 할 경우 총 연면적의 10% 이하, 부대시설 설치·내외장재 교체 등 경미한 변경만 가능하다. 동(棟), 층수 등 중대한 변경은 불가능하다. 설계 변경을 할 경우에도 바닥 면적 합계가 50㎡ 이하여야 한다. 동 위치를 바꾸는 것도 1m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한남3구역 수주전을 앞두고 이 같은 규정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GS건설은 최근 기자간담회을 열어 공개한 설계안은 서울시의 설계 변경 제한 조치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GS건설 측은 “전용면적 59㎡ 이하 소형 주택이 40%에 달하는 한남3구역 설계안을 전면 수정하겠다”면서 “중형 주택을 많이 배치하고 한강 조망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주동도 새롭게 배치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24일 시공사를 뽑는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 재건축 사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강을 볼 수 있는 가구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기존 설계안을 바꾸는 중대 변경이 제시됐다. 은평구 갈현1 재개발구역에서도 공공디자인 정책에 따라 원통형 아파트로 지어야 하는데, 이를 바꾸려는 설계 변경이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현 가능성 없는 설계 변경안을 제시하고 수주에 성공해도 공사비가 늘어나거나 조합원 부담이 커지는 사례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어 이를 방지하려는 것”이라며 “허용 범위를 초과해 대안설계를 제시하는 건설사는 입찰지침 위반으로 입찰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비리를 척결한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불법 설계 변경을 엄격히 단속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과열 경쟁이 사업 지연은 물론 조합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열 경쟁은 결국 조합원 부담을 늘리고, 각종 불법 행위가 나타나면 사업 추진 자체에 차질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