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2002년 10월 입주한 주상복합 아파트 ‘타워팰리스1차’. 이 아파트 전용 137㎡(8층)는 올 8월 초 24억원에 팔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 달 전 같은 주택형 거래가(23억6000만원)에 비해 4000만원 올랐다. ‘타워팰리스1차’ 인근에 위치한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전용 138㎡(41층) 역시 올 7월 16억5000만원으로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도곡동 외에도 서울지역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최근 줄줄이 신고가 행진 중이다. 2003년 7월 입주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II’ 전용 143㎡는 올 1월 16억원에 매매해 최고가를 깼다. 양천구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여의도 ‘롯데캐슬아이비’, 송파구 잠실동 ‘갤러리아 팰리스’ 등이 올해 신고가를 기록했다.
그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때 상대적으로 외면 받았던 이른바 1세대 주상복합의 몸값이 갑자기 뛰고 있다. 이 아파트들은 2000년대 초 지어졌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주상복합 아파트 가격은 12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13.99%)을 기록했다. 2006년(14.77%)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 신축 아파트의 고급화로 주상복합 장점 사라져
‘타워팰리스1차’는 2002년 입주 당시 부(富)의 상징으로 주목받았고 가격도 최고 수준이었다. 당시 일반 아파트에선 찾기 힘든 헬스클럽 등 고급 커뮤니티 시설과 좋은 입지로 인기를 끌었다. 전용 244㎡는 한때 공시가격이 40억1600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짝했던 주상복합 인기는 금방 식었고 2000년대 중반 이후 15년 넘게 가격이 약세였다. 가장 큰 이유는 관리비가 비싸고 면적이 너무 넓어 이른바 ‘가성비’(價性比)가 떨어진다는 것. 국토교통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타워팰리스 1차’ 137㎡는 지난 1월 공용 사용료와 개별 사용료(난방비 포함)를 포함한 총 관리비가 68만1766원, 지난 7월 관리비는 61만5864원이었다. 2000년도 중후반 금융위기 이후 대형 아파트 인기가 급락하면서 가성비가 낮은 1세대 고급 주상복합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금융위기 이후에는1세대 주상복합 아파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호화로운 커뮤니티 시설을 가진 일반 아파트도 속속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수영장, 사우나, 실내 골프연습장 같은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일반 아파트가 드물었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반면 1세대 주상복합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상업지역에 건설돼 일반 아파트보다 조경 시설이 부족하고, 높은 용적률에 대지면적이 적어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힘을 잃어가던 1세대 주상복합이 다시 뜨는 이유는?
1세대 주상복합 가격이 다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주변 아파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탓이란 분석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타워팰리스1차‘ 3.3㎡(1평)당 평균 매매가격은 3680만원. 인근 ‘래미안도곡카운티’(5240만원), ‘도곡렉슬’(5148만원)에 비해 30% 정도 낮다. 교통과 학군이 좋은 부촌이라는 이미지는 그대로인데 가격이 저렴해지자 오히려 ‘가성비’가 좋아졌다는 분석이다.
규제 강화로 재건축 시장의 미래가 어두워진 대신 리모델링이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도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호재다. 주상복합은 재건축은 어렵지만 구조상 리모델링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타워팰리스는 지난해부터 리모델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문래동 메가트리움 등도 준공 15년을 채우면서 리모델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타워팰리스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해졌는데 여전히 부자가 아파트라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리모델링으로 신축 아파트에 맞먹는 시설과 외관을 갖추면 다시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가격 메리트 사라지면 다시 외면받을 수도
하지만 주상복합의 가격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최근 대단지 소형 아파트 수요가 몰리는 상황에서 1세대 주상복합은 여전히 틈새 시장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것.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1세대 주상복합은 재건축이 불가능하고 향후 노후화가 심화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어 일반 아파트보다 인기가 떨어진다”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면 다시 외면받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