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는 외벽 페인트칠이 다 벗겨지고 녹물이 나올만큼 주택 내부 시설이 낡았다. 재개발 대상 구역에 있는 주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전세 수요는 꾸준하다. 교통·학군·편의시설 3박자를 잘 갖춘 집이 많아서다. 전세금이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자녀를 유명 학군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나 결혼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에게 재건축 대상 아파트 전세는 인기가 높다.
실제로 서울 주요 지역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은 20~30%에 그친다. 재건축이 아닌 일반 아파트가 60~70%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가성비(價性比)가 높은 셈이다.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실거래가가 17억~18억원에 달하지만 전세금은 3분의 1 수준인 4억~5억원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72㎡ 역시 20억원대에 거래되는데 전세금은 2억5000만~3억5000만원 정도다. 강남구 평균 전세금이 7억4000만원, 서초구가 7억7000만원인 것을 고려해도 매우 저렴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나 재개발 주택 전세는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가격이 싸다고 무턱대고 전세로 들어가면 계약기간 2년을 못 채우고 쫓겨날 수도 있다. 전세입자 주거 안정을 보장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규정이 재개발·재건축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주택에 전세로 사는 세입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 70조). 집주인에게서 지상권, 전세권설정계약, 임대차계약의 계약기간 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전세 계약할 때 집주인들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해당 건축물을 철거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본 임대차 계약은 자동해지된다’, ‘임대인 요구시 임차인은 즉시 대상 부동산을 임대인에게 조건 없이 명도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세로 살다가 아파트나 주택 철거가 결정돼 이주 공고가 나면 세입자들은 갑자기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것.
따라서 재건축·재개발을 앞둔 주택에 전세를 들고 싶다면 우선 해당 단지의 정비사업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안전하다. 보통 사업초기 단계라고 불리는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안전진단, 구역지정, 추진위설립, 조합설립인가)에서 전세 계약을 한다면 최소 2년 정도는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만약 이 단계보다 사업이 더 진척된 단지에 입주한다면 전세 계약 기간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