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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임대에도 텅텅…아시아 호령하던 전자상가 '끝없는 추락'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09.20 00:09
강변 테크노마트 외부 전경. /최준석 인턴기자

 

컴퓨터 전문제품,DVD를 다루는 9층 상가의 공실률도 심각했다. /최준석 인턴기자


지난 3일 찾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 한 때는 용산 전자상가와 함께 국내 최대규모 전자제품 쇼핑몰로 꼽히던 곳이었지만,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패션 쇼핑몰 ‘엔터식스’가 통으로 임대한 1층과 이동통신기기를 파는 6층을 제외하면 층마다 매장이 텅텅 비어있었다. 평일 낮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상가 건물이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3층 국내가전 상가와 8층 컴퓨터·DVD 상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점포 보다 빈 점포가 더 많았다. 전자상가에 가면 으레 행인을 잡아 붙드는 매장 직원이 나오곤 했지만, 이날은 말 붙이는 상인도 없었다.

테크노마트 3층 국내가전 상가의 텅 빈 모습. /최준석 인턴기자


강변 테크노마트 건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원래 3.5평~4평 정도하는 구좌(점포) 하나당 월세가 30만원, 관리비가 20~22만원 정도였는데, 공실이 점점 많아지면서 임대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 곳도 생겼다”고 말했다. 고객들의 동선에서 좀 먼곳에 있는 점포 중에는 월세를 받지 않은지 10년이 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임대료를 한푼도 받지 않고 세를 주는 이유는 관리비 때문이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실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서 상가 주인들이 매매하려고 해도 몇 년동안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고, 팔리지 않으면 한달 20만원 정도 되는 관리비(4평 안팎)를 점포 주인들이 내야 하기 때문에 공짜로 임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선인상가 일대. /땅집고


한때 호황을 누리던 국내 전자상가들이 몰락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 매출이 10조원을 웃돌아 ‘아시아 최대 규모 IT 메카’로 불리던 용산 전자상가도 텅 빈지 오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용산 전자상가의 평균 공실률은 22.7%였다.

서울의 거대 전자상가인 강변 테크노마트는 물론 신도림 테크노마트와 서초구에 있는 국제전자센터도 텅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신한옥션 SA에 따르면 9월 16일 기준 구로동의 상가 경매 매물 15개중 13개가 ‘신도림 테크노마트’ 점포, 서초구 서초동에서는 총 경매로 나온 매물 10개 중 8개가 ‘국제전자센터’ 점포였다. 그 중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한 점포는 2018년 6월 처음 경매로 나와 12번이나 유찰됐다. 최저매각가격이 최초 2억1700만원에서 현재 1490만원으로 1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땅집고가 전자상가들이 텅텅 비어가는 이유를 취재했다.

■전자상가의 유일한 경쟁력 ‘가격’…온라인 쇼핑 발달로 무력화

수입가전 제품점과 가구전문점이 들어와 있는 5층의 공실. /최준석 인턴기자


전자상가들이 일제히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인터넷·모바일 쇼핑’이다. 다른 상품들도 온라인 쇼핑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만, 전자제품은 유독 온라인 쇼핑의 영향이 강하다.

용산과 테크노마트 등 국내 전자상가가 호황을 누렸던 이유는 서비스가 친절하거나, 쇼핑 환경이 쾌적하기 때문이라는 보다는 삼성이나 LG 등 대형 가전 브랜드가 운영하는 매장에 비해 확실한 가격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전자상가는 불친절하고 정찰제가 아니어서 약간 속는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오프라인 판매장보다는 싸다”는 이유만으로 전자 상가를 찾았다.

하지만 ‘가격 비교’ 시스템을 내건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면서 전자상가들의 유일무이한 장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었다.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수입가전을 취급하는 B씨는 “전자상가가 여전히 다른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최저가를 제시하는 온라인 매장을 당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상인들 이해 관계 제각각…업종 변경도 어려워

현재 테크노마트에서 층별 운영중인 매장. 웨딩홀, 가구점과 같은 새로운 업종이 들어와 있다. /최준석 인턴기자


전자 상가가 장사가 안되면 업종 변경을 하면 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전자 상가는 대부분 한 건물 안에 호별로 구분 등기가 된 작은 점포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형태다. 이런 집합상가의 경우 장사가 잘 안돼 다른 제품을 팔아보려고 해도 업종을 변경하려면 상가 내 다른 점주들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장사가 안되도 상인들끼리 이해 관계가 제각각이어서 업종 변경이 쉽지 않은 것이다.

강변 테크노마트의 경우 2013년부터 3층 절반을 임대하고 있는 웨딩홀 업체 ‘TM웨딩스퀘어’가 나머지 면적까지 합해 통임대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층에 있는 전자가전 점포 업주들이 웨딩홀 확장을 반대해 이 계획이 무산됐다.

■쇠퇴했던 아키하바라, 문화 콘텐츠가 있는 상권으로 부활…용산의 대안될 수 있을까

일본의 전자상권의 중심지 '아키하바라' 거리. / 위키백과 제공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1990년대 일본의 대표적 전자 매장이 몰려 있었던 아키하바라(秋葉原)의 경우 한국의 전자상가처럼 침체기를 겪었다가, 최근 다시 살아 났다. 아키하바라는 전자 제품 매장 위주의 상권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 관련 문화·엔터테인먼트 유통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콘텐츠가 접목되면서 상권이 다시 살아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자매장들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전자제품만 팔아서는 상권이 되살리기는 힘들다고 조언한다. 권강수 한국부동산창업연구원 이사는 “전자상가들 중 일부는 전자제품 판매기능을 포기하고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산 Y-Valley. /서울시 제공


현재 서울시도 아키하바라 사례를 본떠 용산 전자상가에 ‘Y밸리(Y-Valley) 청년창업플랫폼’을 만들고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이기는 하다. 용산 ‘아이파크 몰’은 글로벌 어뮤즈먼트몰을 지향하며 한류스타 굿즈샵인 ‘위드드라마’, 애니메이션·게임 피규어 전문점인 ‘건담베이스’, ‘킹콩 스튜디오’ 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성과를 확실하게 낸 것은 아니다. 용산 아이파크몰 관계자는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전자제품 뿐 아니라 패션·놀이·전시 시설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추가해 상권의 성격을 바꾸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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