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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23채 들어선다더니…10년째 잡초만 무성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19.08.07 04:02

지난 1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철로 서쪽 용산 드래곤호텔 방면 구름다리로 걸어가니 창 밖으로 드넓은 땅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한복판 용산의 핵심 요지다. 한쪽에는 나무와 잡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숲처럼 보였다. 또 다른 한쪽에는 철거하려다가 중단된 건물들이 곧 쓰러질 듯 흉물로 방치돼 있었다. 이 땅은 어른 키보다 높은 철제 펜스에 둘러싸여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

옛 용산철도차량정비소 부지에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다. / 김리영 기자


이곳이 바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다. 하지만 벌써 10년 넘게 버려진 상태로 방치되면서 잡초밭과 유령 건물로 변해가고 있다.

드래곤호텔 2층 레스토랑을 찾은 방문객들은 전면창으로 수풀더미를 조망하게 됐다. / 김리영 기자


정부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세계적인 복합 비즈니스 타운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은 13년 전인 2006년이다. 당시 발표한 마스터플랜에는 높이 620m에 이르는 111층 빌딩 ‘트리플원’을 비롯해 초고층 오피스와 주택 23채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 111층 빌딩 등 초고층 건물 23채 들어선다더니…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추진되기 전까지 이 땅은 경부선과 호남선을 오가는 열차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차량기지였다. 서울 한복판에 한강을 끼고 있는 입지가 워낙 좋아 모든 개발사업자와 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가 2006년 공식적으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 나무위키


서울시는 철도차량기지와 한강변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한강로 3가 일대 56만㎡를 국제업무와 상업 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 업무, 관광 기능, 주거 기능을 갖춘 고층 빌딩 23채를 짓겠다는 것. 예상된 총 사업비는 31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여파로 사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시행자인 ‘드림허브’, 땅주인이던 코레일,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자금 조달 방식과 개발 계획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분쟁을 벌이다가 결국 소송 사태가 벌어졌다. 표면적인 승자는 코레일이었다. 코레일은 작년 4월 토지반환소송에서 이겨 토지대금 2조4167억원과 35만 ㎡ 토지 소유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서는 결과적으로 모두 패자가 됐다고 본다. 코레일은 땅을 찾아왔지만, 사업은 한발짝도 진척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급기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싱가포르에서 “여의도와 용산을 통합 개발하겠다”며 서울역과 용산역을 잇는 대규모 개발 계획을 밝혀 사업 재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즉각 반발하면서 박 시장의 계획은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싱가포르에서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하며 서울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현재 용산차량기지를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해 4억원 규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당초 계획대로 국제업무지구로 발전시키는 방향도 있지만 용역 결과에 따라 계획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잡초와 나무로 뒤덮인 용산철도차량정비소 땅. / 김리영 기자


용산구청은 이 부지에 대해 2022년 1월까지 토지 정화작업을 완료하라고 땅 소유주인 코레일측에 행정명령을 내렸다. 차량정비기지로 50년 넘게 쓰던 땅이어서 납·니켈 등 중금속과 폐고철이 땅속에 매립돼 토지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토지정화 작업을 진행할 업체를 선정 중이다.

■ 용산역 주변 지역 개발은 활기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좌초된 가운데 주변 지역 개발은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용산역에는 2015년 12월 HDC신라면세점이 개점했다. 2017년에는 용산역 서쪽 옛 용산관광버스터미널에 6성급 호텔 서울드래곤시티(SDC)가 최고 40층 3개동에 1700실의 국내 최대 규모로 개장했다. 용산역 1번출구 앞에는 2020년 8월 입주 예정인 ‘용산 헤링턴스퀘어(용산역전면3구역)’ 주상복합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주변에는 작년 7월 ‘푸르지오 써밋(용산역 전면 2구역)’이 준공했다.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용산역 동쪽. / 김리영 기자


용산 철도차량기지와 한강로 사이에 있는 ‘용산 차량기지 전면 1구역’ 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 부지에 지상 35층 9개동 800가구의 주거 시설과 상업 시설을 지을 예정”이라며 “연말까지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 곳에서는 대지지분 49㎡(15평)짜리 근린생활시설 건물 기준으로 3.3㎡(1평)당 시세가 1억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용산역 주변에 남아있는 개발 부지들. / 네이버지도


HDC현대산업개발도 지난 1일 ‘용산철도병원부지’에 주거복합단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용산역 앞 전면공원(1만2730㎡) 부지를 지하화하는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강남 코엑스 같은 문화와 쇼핑 중심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주변 지역 개발만 제대로 되면 강남에 버금갈 대규모 비즈니스 지역이 될 것이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언제 개발될지는 기약이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 “용산은 언젠가 개발된다”는 말만 믿고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수십조원 개발 사업을 민간 기업이 홀로 개발하기에는 장애물도 많고, 리스크도 너무 크다. 하지만 현재 중앙 정부나 지자체 모두 손을 놓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용산 개발처럼 대규모 사업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진척이 쉽지 않다”며 “현재로선 서울시와 국토부도 별 의지가 없어 보이고, 그 결과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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