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는 중소형(전용 84㎡)과 대형(176㎡) 주택형이 있다. 이 아파트는 84㎡는 올해 6월 20억4000만원(14층)에 팔렸는데, 이 주택보다 2배로 넓은 176㎡는 지난달 27억원(3층)에 계약했다. 면적은 2배인데 가격은 1.3배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것. 2년전만 해도 두 주택형은 각각 14억원(84㎡)·24억1000만원(176㎡)에 거래돼 가격 차이가 1.7배였는데, 그 사이 가격 차이가 크게 줄었다.
비슷한 현상은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에서도 나타났다. 이 아파트 전용 84㎡는 올 6월 중순 27억4000만원(18층)에 거래했다. 2배 큰 164㎡는 올 5월 41억8000만원(13층)에 팔렸다. 면적은 2배 차이인데 가격 차이는 1.54배 수준이다.
그동안 1·2인 가구 증가와 각종 세제 혜택 영향으로 소형 주택이 인기를 끌면서 대형 주택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했다. 소위 ‘가성비(가격대 성능 비)’가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소형 아파트와의 격차가 좁아짐에 따라 역설적으로 ‘대형 아파트의 가성비’가 주목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대형 주택에 대해 매수세도 살아나고 있다.
■ 공급량·소형 주택과 가격차 줄어든 대형주택
지난 10여년 간 대형 아파트의 공급은 계속 줄어들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8년 인허가 받은 주택 중 135㎡ 이상 대형은 전체의 9.3%로 가장 적었다. 이후 10년간 더 줄어 2018년에는 6.5%까지 비중이 낮아졌다. 반면 2008년 전체 주택의 34.1%를 차지했던 중소형 주택(60~85㎡)은 2018년 43%로 비중이 늘었다.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대형 주택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대기 수요가 늘어난 소형 주택은 지난 10여년 간 대세가 됐다. 최근엔 건설사들도 84㎡ 이하 중소형 아파트만 공급하는 추세다. 올해 서울 강남권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135㎡ 이상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소형 주택 가격이 대형 주택 가격을 거의 따라잡아가는 요즘, 대형주택을 틈새시장으로 보고 매입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지금이야말로 대형주택을 구입할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훨씬 넓은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비용으로 20~30% 정도 높은 가격은 적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형 주택의 거래량도 늘고 있다. 서초구 ‘반포자이’ 132~216㎡는 거래량이 1분기 5건에서 2분기 13건으로 늘었다. ‘래미안퍼스티지’ 116~223㎡ 1분기 단 1건이던 거래량이 2분기 10건으로 증가했다.
물론 대형주택 수요는 소형 주택에 비교할 수준으로 아니지만, 대형주택은 찾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와 부모를 부양하는 등 대가족인 경우, 또 넓은 집에 살고자 하는 부유층인 대형 주택의 주요 수요층이다. 또 소형 주택 가격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이상 대형 주택도 어느 정도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대형주택 가격, 다시 오르나
그렇다면 대형주택 가격은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20여년 전 대형주택이 고급주택으로 인식되며 공급과 수요가 늘고, 단위면적 당 가격이 높아졌듯이 현재 지속적으로 공급이 줄어들어 희소해진 대형주택 가격이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상위(10분위) 계층 소득증가율은 5.6%로 증가한 반면 1~4분위 계층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대형주택을 구매할 여력이 늘어난 부유층 사이에서 대형주택의 인기가 다시금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주택당 면적과 1인당 주거 면적이 최하위 수준이라 언제든 대형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그동안 중대형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지역에서는 대형 주택의 투자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