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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치면 쓰러질 듯…기묘한 건물로 주목받는 건축가들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08.02 05:21 수정 2019.08.02 10:51

[젊은건축가상 수상자를 만나다] 윤한진·한승재·한양규 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 소장

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한양규(왼쪽), 윤한진(가운데), 한승재 소장. /이지은 기자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너무 재미가 없어요. 다양한 건축물 중 아파트만 ‘돈 되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거래되고 있잖아요. 건축가를 잘 활용하면 건물에 미학적인 가치 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까지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성수연방’, ‘옹느세자메’, ‘대충유원지’처럼 설계하는 곳마다 ‘핫 플레이스 (인기있는 장소)’로 만들고 있는 윤한진(35)·한승재(36)·한양규(36) 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2019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이들은 수상자 중에서도 1위 격인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 뽑혔다.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동기와 선후배로 만난 세 명이 나란히 퇴사해 2013년 푸하하하 프렌즈를 차린지 6년만이다.

푸하하하 프렌즈는 매 프로젝트마다 재밌고 유쾌한 작업 후기를 올려 관심을 모은다. /푸하하하 프렌즈 홈페이지


푸하하하 프렌즈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자사 홈페이지와 SNS(소셜미디어)에 관련 글을 올린다. 유쾌하고 철학이 담긴 게시글을 보고 의뢰하는 건축주가 늘어나고 있다.

-기발한 건물을 짓기로 유명하다.

▶윤한진: 딱히 의도한 건 아니다. 건물을 지을 곳의 환경적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과정, 혹은 건축주가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을 건축학적으로 메꾸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밌는 건물이 나왔다.

오각형 대지에 삼각형으로 지은 '어라운드 사옥'. /푸하하하 프렌즈 홈페이지


층을 한 단씩 올려 계단처럼 보이는 '어라운드 사옥'. /김용관


측면에서 보면 오각형 대지에 삼각형으로 지은 건물이 여러 겹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용관


'어라운드 사옥' 1층에 있는 삼각형 모서리 공간. /김용관


기발한 외관으로 유명세를 탔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어라운드 사옥’도 그렇다. 대지가 오각형이었다. 법정주차대수 2대를 빼니 건물 올릴 땅은 삼각형으로 나왔다. 이 땅을 꽉 채워서 쓰려면 건물도 삼각형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대지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면서 멋진 건물이 나올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지상층을 계단처럼 한 단씩 차등을 줘서 쌓아 올리는 방식의 외관 디자인이 나왔다.

-튀는 건물은 수익성 측면에서 불리한다는 인식도 많다.

▶한승재: 맞다. 그래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어렵다. 하지만 건축가들이 무작정 미학적인 가치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건축주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건축적·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이 나올지 고려해서 설계한다.

예를 들어 원룸 100가구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가정하자. 건축주는 임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100가구를 꽉 채워서 건물을 지어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 입장에서는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80가구만 짓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대한 많은 방에 햇빛이 들어오게 짓는다거나 위치에 따라 방 면적에 차등을 둘 수도 있다. 주차장을 밝게 해 무섭지 않은 공간을 만드는 등 부수적인 건축 요소를 살리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구 수는 줄어도 건물 자체의 가치가 상승해 공실률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

건축주는 건축가를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최대한 방을 많이 만들어달라는 둥, 공사비를 최저가로 맞춰달라는 둥 금전적인 효율만 따지면 좋은 건물이 나오기가 어렵다.

-건축적 가치가 있으면서 상업성도 갖춘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손님들이 빙 둘러앉을 수 있도록 만든 '옹느세자메' 내부. /옹느세자메 인스타그램


옹느세자메을 찾은 고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 /푸하하하 프렌즈


바닥에 보일러를 깔아 겨울에는 손님들이 뜨끈한 온돌바닥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푸하하하 프렌즈


▶한양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옹느세자메’가 있다. 목욕탕이나 학교 운동장처럼 빙 둘러 앉는 형태의 카페인데 의자나 테이블이 없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면 고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몇 석은 마련해야 한 시간에 손님 몇 명 받아서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계산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남동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바를 벽쪽이 아닌 창가에 둔 '대충유원지'. /텍스처 온 텍스처


직원과 고객 모두 창가 쪽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윤한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 ‘대충유원지’도 소개하고 싶다. 카페 겸 바(bar)로 운영한다. 대부분 바는 손님이 바텐더와 주류 수납장이 있는 벽을 바라보는 구조다. 대충유원지는 반대다. 손님이 창 밖을 보면서 술을 마시도록 배치했다. 밖에서 보면 가게 분위기가 활력있어 보인다. 창가에 바를 두면 바텐더의 근무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

독특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 덕분에 사라지지 않고 동네 주민들의 단골 가게가 됐다. /텍스처 온 텍스처


처음 문을 열 때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올만큼 ‘핫 플레이스’였다. 요즘은 인기가 약간 식었지만 상업적 가치는 여전하다. 이 곳에서 폐업하지 않고 지역 손님들에게 단골 카페와 술집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특별한 공간 경험을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이 갖는 가치는 무엇인가.

▶윤한진: 건축과 부동산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건축가 입장에서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너무 재미가 없다. 건물을 지어서 땅값이 오르면 몇 년 지나서 팔고, 부수고, 재건축하는 게 거의 전부다. 건축이 공간에 가치를 더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다원, 카페테리아, 레지던스 등을 복합해서 지은 '흙담'. /김용관


흑담은 주변 환경을 고려해 정성스럽게 지었다. /김용관


어머니를 위해 경남 김해에 ‘흙담’이라는 건물을 지었다. 전통 다원(茶園), 카페, 레지던스 등을 포함한 복합용도 건물이다. 보통 시골에서는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어도 막상 부동산에 내놓으면 건물 가격은 감가상각해서 ‘제로(0)’로 평가하고 달랑 땅값만 매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흙담은 달랐다. 매물로 내놓았을 때 건물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제 값에 매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렇게 건축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 가운데 자금력이 있는 이들은 극소수여서 아파트 외에는 거래가 안되는 상황은 이해한다. 건축가의 창의력이 담긴 좋은 건축물을 대중이 알아보고, 사고 싶어하고, 매매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흙담’같은 사례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사람들이 좀 더 건전한 생각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사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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