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GO]
- 북서풍과 맞서는 땅 피해야
햇볕·바람·습기 반드시 고려를… 자칫 냉·난방비로 속 썩을 수도
지난해 5월 건축주 A씨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소개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맛집 골목 도로에 접한 땅 132㎡(약 40평)를 12억원에 샀다. 시세보다 싸게 잘 샀다며 흐뭇해했다. A씨는 수목플랜건축사무소를 찾아 "위치가 좋으니 작은 상가와 주택을 넣을 수 있게 설계해 달라"고 했다.
서관호 수목플랜건축사무소 소장이 이 부지를 검토했다. 설계를 하다보니 도로를 내기 위해 33㎡(약 10평)를 정부에 내놔야 하는 땅이었다. 이를 '도로 제척(除斥)'이라고 한다. 난데없이 땅 4분의 1이 날아가버린 것. 3.3㎡(1평)당 3000만원 주고 산 줄 알았던 땅이 4000만원짜리가 된 셈이다.
서 소장은 "대부분의 건축주가 땅을 먼저 사고 난 뒤에 건축가를 찾아오는데, 이건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며 "건축 계획이 있으면 건축가부터 찾아와 어떤 건물을 지을지 논의하고, 땅을 계약하기 전에는 건축가의 조언을 받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주택·상가·빌딩을 지을 때 건축주는 꿈에 그리던 '건물'을 생각한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건물을 생각하기 전 땅을 먼저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땅을 고를 때는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현상일 구도건축 소장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건축할 때 '남향'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택의 햇볕과 바람, 습기 등을 고려하면 남향만큼 좋은 땅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전원주택 지을 때 좋은 경치만 보고 북쪽을 향해 경사진 산등성이에 집을 짓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이런 집은 결국 과도한 냉·난방비로 속을 썩이고 건축주가 평생 후회한다는 것이다. 현 소장은 "겨울 북서풍을 직접 맞는 땅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저수지와 큰 강이 가까이에 있으면 주택 내부에 습기가 많이 생겨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차가 다닌다고 모두 도로는 아니다"
도심에서 건축 부지를 선택할 때는 주차장과 도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접근성과 주차 편의를 감안해 도로 폭은 최소 2.5m, 넉넉하게 6~8m까지 확보할 수 있는 땅이 좋다는 것이다. 현 소장은 "면적이 넉넉하지 않은 도심지라면 경사진 땅의 구조를 활용해 주차장을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부지 옆에 붙은 도로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도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니지만 그 밑으로는 전기·수도·통신 등 기반 시설이 지난다. 홍만식 리슈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차가 다닌다고 모두 지적(地籍)상 도로는 아니다"라며 "전원주택을 지을 때 눈에 보이는 도로가 실제 접근 가능한 도로인지, 별도의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반 시설이 깔려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점 있는 땅도 해법은 있어
건축주가 이미 약점이 있는 땅을 구입했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땅이 가진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건축가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정승이 유하우스 소장이 설계한 인천 남동구 논현지구 단독주택이 그런 경우다. 이 땅의 동·서·남쪽에는 이미 2층 단독주택이 있었다. 유일하게 트인 북쪽은 등산로로 이어져 오가는 등산객이 많았다. 한마디로 사방이 외부인의 시선에 갇힌 땅이었다. 건축주는 이곳에 사생활이 보장되면서 정원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을 원했다.
정 소장은 1층에 기둥을 세우고 2층에 방을 두는 이른바 필로티 구조의 단독주택을 설계해 해법을 찾아냈다. 필로티 구조의 건물 1층에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이 건물 아래에 있어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정 소장은 "모든 조건에 딱 맞는 땅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건축은 한계가 있는 터에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해법을 찾는 과정인데 이것도 건축의 즐거움이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