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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흉물이 유산?"…다 낡은 아파트 보존하라는 서울시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06.22 04:46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아파트 철거 현장.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남기자고 제안한 2개 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국경제TV 화면캡처


재건축 공사를 위해 작년 8월부터 기존 아파트 철거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최근 전체 58개 동(棟) 가운데 56개 동의 철거 작업이 끝났다. 현장엔 아직도 5층짜리 낡은 아파트 2개동이 마치 섬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이 2개동은 앞으로도로 철거할 계획이 없다. 조합 측이 서울시 권고에 따라 ‘미래 유산’이란 명목으로 영구 보존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낡은 아파트를 1~2개동씩 남기고 재건축 하는 사업장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와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등 다른 재건축 아파트도 서울시 권고에 따라 낡은 아파트를 한 동씩 남긴 채로 재건축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서 근현대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캡쳐


‘아파트 한 동 남기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발표한 ‘근현대 유산의 미래 유산화 기본구상’ 발표를 근거로 한다. 문화재처럼 역사가 깊지는 않아도 비교적 근래 만든 유무형 자산 중 미래 세대에 전달한만한 가치있는 것들은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는 것. 서울시는 30~40년 전 지은 아파트 역시 근현대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확인할 있다는 점에서 미래유산 지정 이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 그대로 보존한다더니…리모델링하겠다는 서울시

리모델링한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내부.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대부분의 가구가 내부를 뜯어고쳤기 때문에 지어질 당시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이비디자인


과연 그럴까. 서울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겠다고 한 아파트 중 완공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아파트는 단 한 곳도 없어서다. 실제로 개포주공1단지는 집안에 연탄 아궁이가 설치됐다는 점이 보존 이유였다. 하지만 대부분 가구는 리모델링을 거쳐 아궁이가 남은 집은 거의 없다. 반포주공아파트는 1980년대 주택난 해소를 위한 택지개발촉진법이 적용된 첫 사례 중 한 곳이어서 경제발전 시기 서민 주거 환경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래유산 지정 대상에 올랐지만, 마찬가지로 과거와 같은 내부 구조를 찾아볼 수 있는 가구가 드물다.

잠실주공5단지는 15층 아파트 1개동 중 상층부는 철거하고 4층만 남겨서 보존하기로 했다. /조선DB


더 황당한 것은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아파트를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리모델할 계획이라는 것. 단지별로 보존하기로 한 아파트는 구조 변경을 통해 근현대 주거환경 박물관이나 주민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할 방침이다.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지상 15층 규모인 523동을 4층까지만 남기고 나머지 층은 허물어 보존하기로 했다. 한 조합원은 “내부 리모델링을 거치면 남는 건 페인트 칠이 벗겨진 콘크리트 외벽 뿐인데, 이걸 보존한다고 볼 수 있느냐”며 “새 아파트에 흉물만 남겨두는 꼴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말도 안되는데…” 조합원들, 대놓고 반대 못해

서울시의 아파트 한 동 남기기에 반대하는 의견을 남긴 사람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상황이 이렇지만 재건축 조합원들은 서울시 상대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데 조심스러워한다. 문화재와 달리 미래유산은 소유자 동의를 기반으로 한 자발적 보존이 원칙이다. 하지만 재건축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 눈치를 보느라 조합원들은 반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조합원은 “땅 한 평이 아쉬운 상황에서 누가 헌 아파트를 남긴 채로 재건축하고 싶어하겠느냐”며 “반대했다가 미운털이 박혀 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길까봐 다들 울며 겨자먹기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 여론을 의식한 서울시도 도시계획위원회로 공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계획위원회가 재건축 아파트 일부 동을 미래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해당 동은을 기부채납 받는 대신 재건축 용적률을 상향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안을 제안했다”며 “다만 아직 선례가 없고 정확한 설계안이 나오지 않아서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고 했다.



└시간을 거스른 90일 창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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