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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갑 건물'에 갇힌 한국…엣지있게 지어야 돈 번다"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05.23 06:28

[미리 만난 건축주 대학 멘토] 윤동식 홍익대 교수 "사용자의 다양한 니즈를 담을 수 있는 건물 지어야"

윤동식 홍익대 교수는 "건축주의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가 없다면 좋은 건물을 만들기 힘들다"고 했다. /이지은 기자


“건축주가 된다는 건 인생에 한번 뿐일 수도 있는 큰 쇼핑을 한다는 것과 같죠. 이왕 큰 돈이 들어가는데 틀에 박힌 듯 평범한 건물보다 인사이트(insight·영감)를 줄 수 있는 건물을 지어보는 건 어떨까요. 고정관념만 깨뜨린다면 일반인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윤동식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도쿄대에서 건축학 석·박사를 마치고 20년 넘게 일본 건축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권에 속하지만 주택이나 상가를 지을 때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다른 선진국에서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서 나오는 다양한 니즈를 반영해 내부공간구조를 다양화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 쓰임새를 단정하고 흔히 볼 수 있는 범용적인 건물을 만드는 대신 해당 건물만의 특징을 살려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소위 ‘엣지 있는’ 건물은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기 때문에 임대시장에서도 평범한 건물보다 거래가 잘 되고, 임대 수익률도 높다.

방들을 콘크리트 벽으로 구획하는 대신 가동파티션을 설치해 다양한 상황에 맞춰 공간의 구성이 가능하도록 한 주택. /Nine Square Grid House, Shigeru Ban


윤 교수는 좋은 건물이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건축주의 존재이며, 건축주들이 건축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건축가 의견만 따르거나 건축의 경제성만 따지다보면 평범한 성냥갑 건물밖에 지을 수 없다는 것. 그는 “아직 우리나라 건축주들은 최대한 보수적인 방식으로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건축 방식과 공간 구조를 다양화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건물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건축주들은 그만큼 건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우리나라 건물 디자인과 구조는 다 비슷하다는 비판이 많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부터 국민들에게 건물을 빠르게 대량 공급하기 위해, 건물을 쉽게 상품화하고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일시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성냥갑 아파트’다. 똑같이 설계된 유닛(unit)을 무한 반복해 지으면 최대한 많은 가구를 남향으로 배치할 수 있고, 설계·시공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내부 구조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뻔한 우리나라 아파트. /윤동식 교수


내부 구조가 비슷한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34평 아파트라고 하면 머릿속에 집 구조가 뻔하게 그려진다. 거실 하나에 주방 하나, 방은 3개 정도 있겠다라는 식이다. 원래 주택은 반드시 설계도를 확인하고 직접 내부를 확인해야 할만큼 다양해야 하는데, 시장의 경제성을 건축에 적용하다보니 다양성이 말살된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독특한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건물을 많이 짓는다.”

―독특한 가치관을 반영한 건물이란.

“일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문화가 비슷한데 일찍부터 다양한 건축을 시도해왔다. 야마모토 리켄이 1989년 지은 ‘호다쿠보 제 1단지 집합주택’이 좋은 사례다. 아파트인데도 중정(中庭)이 있고, 모든 가구가 이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중정이 있는 집합주택에서는 이용자의 동선이 외부에서 중정으로, 계단실을 거쳐 현관을 들어선 후에는 거실에서 각자의 방으로 각각 이루어진다. 공공성이 큰 외부 공간에서 가장 사적인 개실로 이동하는 식이다.

일본의 '호다쿠보 제 1단지 집합주택'. /Riken Yamamoto


하지만 이 호다쿠보 집합주택에서는 가장 공적인 외부에서 현관을 거치면 바로 개실로 연결된다. 개실을 나와 브릿지를 건너면 개방적인 리빙룸이 나오는데, 이 리빙룸이 중정을 에워싸고 계단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사람이 머물기 쉬운 막다른 공간(dead end)를 개실이 아닌 중정으로 뒤집어 집합주택에서도 ‘같이 사는 의미’를 강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건축안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호다쿠보 제1단지 집합주택'의 평면도. /윤동식 교수


'호다쿠보 제1단지 집합주택'은 개실에서 거실로 가려면 외부에 노출된 브릿지를 지나도록 설계해 소통이 필요한 일본 사회에 시사점을 던진 건축 사례로 꼽힌다. /Riken Yamamoto


임대아파트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짓는 추세다. 건축가의 색깔을 살려 지은 임대아파트를 ‘디자이너스 맨션’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아파트보다 월세가 더 비싸도 세입자에게 인기가 많다. 예를 들면 일본인들은 지하철 역세권이 아닌 곳에 살 때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 점을 겨냥해 건물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동 수단을 집 안에 들일 수 있게끔 설계한 곳이 있다. 건물 외부에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주차했다가 파손·분실을 우려하는 고객들을 배려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통할까. 아직은 이르지 않을까.

“사실이다. 주택이나 상가는 규격이 들쭉날쭉하거나 외관이 너무 튈 경우 매매가 쉽지 않을 것이란 강박이 아직 크다. 하지만 여전히 기능을 살리는 데만 중점을 둔 산업화 시대의 건축 방식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기능보다는 독특한 디자인을 강조하는 ‘디자인 가전’ 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곧 건축계로도 연결 될 것이다. 건축주들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건물 짓기를 시도한다면 당장은 아니어도 추후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공동주택이지만 이웃과 소통할 수 있도록 어프로치계단에 접하여 테라스를 설치하고, 테라스를 통하여 주거에 들어가는 '리빙액세스'방식의 한 아파트./ Ryujabira Public housing, Makoto Motokura


각 방들을 벽체가 아닌 외부로 분절하여 공간들이 서로 관계성을 갖도록 설계한 주택. / Weekend house, Ryuei Nishizawa


―예비 건축주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올리고 운영하면서 수익만 내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반영한 결과물인 건축물을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건축이다. 건물을 무조건 독특하게 지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건물은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례를 받아들여야 내 건물을 세울 때 견문을 넓힐 수 있다. 좋은 건물은 건축가 혼자서가 아니라 건축주의 좋은 참여도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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