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1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사전 무순위 청약’을 받은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 한양수자인 192’. 총 1129가구를 분양하는 단지인데, 이틀 동안 1만4376명이 접수했다. 지난 3월 경기 성남시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 부영’ 사전 무순위 청약에도 2132명이 몰렸다. 신청자 수가 일반 분양 가구 수(556가구)보다 4배 정도 많았다.
최근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청약 요건이 워낙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지다보니 순위 내에 분양되지 않은 미계약분 아파트를 노리는 ‘줍줍’이란 말까지 생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높은 ‘사전 무순위 청약’이란 말 그대로 순위 없이 청약 신청을 받은 후, 아파트 미계약 물량이 발생하면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자를 선정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면서 새로 생겼다. 올해 2월 1일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아파트 단지부터 적용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사전 무순위 청약에 대해 “소비자와 건설사 모두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 앞으로도 경쟁률이 높게 나타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땅집고가 사전무순위 청약의 노하우를 정리했다.
■이제 모델하우스 앞에서 ‘줍줍’하려고 밤새 기다릴 필요 없어
‘사전 무순위 청약’을 통하면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미계약분 물량을 훨씬 편리하게 분양 받을 수 있다. 사전 무순위 청약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잔여분 아파트 추첨에 접수하려면 건설사 모델하우스를 직접 방문해야 했다. 청약 통장·주택 보유 여부와 관계 없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인기가 많은 단지의 경우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기 단지의 미계약분은 건설회사 내에서 ‘깜깜이’로 분양을 받아가는 특혜 분양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기존 청약 시스템에 아예 ‘사전 무순위 청약’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사전 무순위 청약은 금융결제원이 관리하는 ‘아파트투유’ 홈페이지를 통해 1순위 청약에 앞선 이틀 동안 접수를 받는다.
사전 무순위 청약과 일반 청약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청약 통장이 없어도 된다는 점. 사전 무순위 청약은 만 19세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고, 1순위 청약과 중복으로 신청하거나 순위내 청약 없이 무순위 청약만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첨되더라도 재당첨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건설사들도 계약률 높일 수 있어 환영하지만…‘현금부자’들만 재미보는 건 예전과 같아
건설사들도 사전 무순위 청약을 반기는 분위기다. 미계약 물량에 대한 수요를 미리 확보해 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사전 무순위 청약 제도 채택 여부는 건설사의 재량에 맡기고 있지만 이런 장점들 때문에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온다.
국내 건설사 관계자는 “청약 1순위나 높은 가점을 가지지 못했지만 아파트 당첨을 노리는 수요자들이 사전 무순위 청약에 몰릴 것”이라며 “한 번 미분양 낙인이 찍히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가 어려워 물량을 해소하는 데 한계를 겪던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아파트 단지들에 활용하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 무순위 청약으로 현금이 부족한 서민들이 내집마련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 무순위 청약도 일반 청약과 마찬가지로 대출 규제를 받는다. 서울에선 84㎡ 아파트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9억원 이상인 주택형은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정작 실수요자들은 미계약분 아파트를 손에 넣을 수 없는 구조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소비자와 건설사의 편의를 높인 점도 좋지만, 사전 무순위 청약 경쟁률을 통해 주택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다만 대출이 막혀있는 현재 상황으로서는 결국 ‘현금 부자’들만 미계약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