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 안에 구치소 건물을 남겨두겠다니 이런 황당한 발상을 누가했는 지 모르겠어요.”
서울시가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일대 개발계획(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구치소 건물 일부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보존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구치소 부지에는 13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성동구치소 일대 개발기본계획 및 지구단위계획’ 기본 구상안에 구치소 담장과 감시탑, 구치소 1~2개 동(棟) 등을 보존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가 사업을 주관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기존 구치소 시설을 보존·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기본 구상안은 올해 말쯤 지구단위계획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1977년 지은 성동구치소는 7만8758㎡ 규모로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구치소는 작년 6월 송파구 문정동 법조타운으로 이전해 지금은 폐쇄됐다. 당초 이곳에는 복합문화시설과 공공도서관, 청년스타트업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는 성동구치소 부지를 공공택지지구로 선정해 1300가구의 분양·임대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했다.
송파구 주민들은 애초 문화공간으로 계획됐던 이곳에 임대주택과 공공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더구나 성동구치소 건물 일부를 허물지 않고 남겨둔다는 계획이 전해지자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람사는 아파트 단지에 구치소 건물을 남겨 놓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동구치소는 문화적 가치도 없고 범죄인을 수용했던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1968년에 지은 영등포구치소 건물이 완전히 철거돼 재개발을 진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송파구 주민 박모(37)씨는 “서울시가 성동구치소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던 서대문 형무소와 혼동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 “아파트 굴뚝, 쓰러져가는 벽돌집도 보존해라”
서울시가 각종 개발 과정에서 무리한 ‘옛 흔적 남기기’를 시도해 주민 반발을 사는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송파구 잠실동에서 최고 50층 재건축을 앞둔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는 서울시 요구에 따라 재건축 후에도 단지 한 가운데에 아파트 높이보다 더 높은 굴뚝을 남겨둘 뻔 했다. 1970~80년대 지은 중앙난방시스템을 갖춘 아파트에는 거대한 굴뚝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서울시는 잠실주공5단지가 최초로 중앙난방시스템을 갖춘 단지라서 보존할 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
서울시의 이런 요구에 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사실상 아파트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주민들은 결국 굴뚝은 철거하고, 한강변 잠실대교에 가장 인접한 523동 1개동을 남겨두는 것으로 서울시와 합의했다. 15층 건물을 4층까지만 남겨두고 리모델링 해 문화시설로 활용하기로 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재개발 사업인 세운3구역은 당초 올 초 철거를 앞두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냉면집인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올해 말까지 사업을 중단시켰다. 을지면옥 역시 지은지 40년 정도 된 벽돌집이다. 건축이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없는 벽돌집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재개발 사업을 중단시킨 것이 옳으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 같은 보존 논란의 배경에는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의 개인 철학이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가 철거 후 다시 짓는 개발보다 보존과 재생을 중시하는 박 시장의 철학을 반영하면서 주민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혐오시설로서 구치소를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리모델링을 통해 특색있는 문화시설로 활용하자는 의미”라며 “지역 주민들과 만나 충분히 설명하고 추후 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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