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일 구도하우스 대표 “살기 좋은 집의 비결…전통 건축에서 답 찾았죠”
“아파트에서는 사용자가 집에 무슨 기능이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요. 오히려 훨씬 오래 전 지은 전통 한옥은 동선(動線), 문의 위치나 크기 하나까지 그곳에 사는 사람에 맞춰 철저하게 설계했죠. 살기 좋은 집의 비결은 전통 건축 속에 답이 있습니다.”
배우 이영애 씨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한 현상일 구도하우스 대표. 그가 설계한 세련된 외형의 주택에서 전통 건축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모든 단독주택 설계의 밑바탕에는 전통 건축의 원리가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한옥이나 풍수지리라고 하면 미신적인 측면을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모두 과학적 원리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
2016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의 단독주택 ‘파티오하우스’는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 현장이다. 중정(中庭)을 뜻하는 파티오(Patio)란 이름처럼 생활 공간과 소박한 안뜰의 조화가 돋보인다.
■필요한 기능을 알차게…내 몸에 꼭 맞춘 집
대부분 LDK(Living, Dining, Kitchen: 거실, 식당, 주방) 구조를 취하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사용자 생활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배치를 시도할 수 있다. 공간 구조를 고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집이 갖춰야 할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좋은데, 거실이나 식당에 해당하는 공용 공간, 침실과 서재 같은 사적 공간, 현관·화장실 등 뚜렷한 기능을 가진 핵심 공간으로 구성된다.
파티오 하우스의 대문과 현관문은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대문을 거쳐 오른쪽으로 이어진 낮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후 다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관문이 나타나는 식이다. 도로와 마당이라는 공용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인 집 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이처럼 두 번 꺾이는 동선으로 계획해 사생활을 보호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가 곧장 도로로 달려나갈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거실과 부엌, 식당 그리고 안방을 배치한 1층은 전형적인 한옥 구조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출입부 중심으로 왼쪽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드는 사랑채, 즉 거실로 꾸몄다. 오른쪽은 사적 공간인 2층 침실로 갈 수 있는 계단실을 만들었다. 한옥의 안마당 역할을 하는 중정은 거실과 식당, 부엌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도록 한다. 출입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반대쪽에 안방을 배치해 안정감을 주고, 손님이 있을 때는 편리하게 오가며 응접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계절이 그대로…한 폭의 그림 같은 창
단독주택에서는 창을 계획하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바깥 풍경을 내부로 들여오는 창은 모양과 크기,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줘 그 자체로 하나의 액자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창가에 나무가 있다면 기둥과 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게 할지, 푸른 잎사귀만 보이도록 할지 정할 수 있다.
외부인 왕래가 잦은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이라면 자연을 보고 싶은 마음과 사생활 침해 걱정이 충돌하게 된다. 파티오 하우스는 집 안에 중정을 계획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중정 덕분에 집안으로 더 많은 빛을 들여오는 것은 물론 외부 시선 걱정 없이 사계절 내내 자연의 변화를 즐길 수 있다. 어깨 높이의 띠창부터 큰 창까지 다양한 시야를 경험하는 재미도 더했다.
■빛 들이고 바람 통하고…똑똑한 열 관리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볕과 바람이다. 계절에 따라 적절한 자연광을 들이고, 공기가 실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옥에서는 처마로 빛을 조절했고, 2개 이상의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냈다.
지붕을 길게 뻗어낸 한옥의 처마와 달리 이 집은 테라스와 발코니의 간격 차이를 활용해 직사광선이 내부로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이처럼 현대식 주택은 단차와 벽체의 깊이감을 활용해 처마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하고, 디자인 효과도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정 덕분에 집 가운데가 비어 있어 집 안 모든 공간에서 공기 순환이 잘 이뤄진다. 여름에 실내 온도를 낮춰 냉방비를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붕 역시 빈 공간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설계해 열을 머금고 있지 않도록 했다.
빛과 열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천창(天窓·하늘로 열린 창)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도 좋다. 거실에서 이어진 테라스 공간은 천창을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은 극대화하고, 비오는 날도 폴딩도어를 열어 마치 야외에 있는 것처럼 취미 활동을 하거나 환기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