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이삭줍기하듯 싼 매물들이 10채 넘겨 팔려나갔어요. 비싼 매물만 남으니 다시 매수세가 없네요.”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부터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저가 매물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매물 거래가 반짝 증가한 이후 이달 들어 다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싼 매물이 사라지고 호가가 다시 오르자 거래가 끊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시장에서는 가격 하락 여지가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 급매물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며 “관망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3억~4억 낮은 급매물 팔려나가고 호가 상승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2월의 하루 평균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신고일 기준)는 56.3건, 3월은 57.7건이었다.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올해 초 가격 하락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거래가 급감했다. 그러나 이달 12일 현재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건수 기준)은 899건으로 일평균 74.9건이 신고됐다. 이는 주택거래신고일은 계약후 60일 이내로, 이달 거래 신고가 증가한 것은 실제로 2·3월에 계약이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달 거래량(74.9건)도 작년 같은 달의 하루 평균 거래량(206.6건)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수준이지만 연초 극심한 거래 절벽에 비해서는 다소 거래의 숨통이 트인 모양새다.
가격 하락세도 다소 주춤해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강남 4구 주간 아파트값은 지난 1월 말 0.35%, 3월에는 주간 0.18∼0.19%씩 떨어졌으나 최근 3주 동안은 -0.07∼0.10%로 낙폭이 다소 둔화했다.
이는 지난해 최고가 대비 3억~4억원 정도 떨어진 가격을 보고 매수에 나선 수요자들이 저가 매물을 사들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79㎡의 경우 지난해 9·13대책 이후 나왔던 15억원대 급매물이 모두 소진된 후 이달 초 실거래가가 16억4000만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최고 금액은 18억5000만원이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전용 76.5㎡는 지난해 최고가(19억2000만원)에서 3억원 이상 떨어진 16억1000만∼16억2000만원짜리 급매물이 소진된 후 지난달 실거래 금액이 18억원으로 올랐다.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달에만 17건 정도의 매매가 이뤄진 뒤 이달에는 거래가 거의 없다고 한다.
강북도 최근 일부 인기 단지의 급매물이 몇 건 팔린 뒤 다시 잠잠한 상황이다. 재건축 추진 단지인 마포구 성산동 시영아파트는 전용 77㎡ 매물이 임차인 승계 조건으로 최저 7억원에 거래된 뒤 현재 7억3000만∼7억5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 푸르지오도 최근 그동안 시장에 나와 있던 급매물 3건이 팔렸다. 전용 59㎡의 경우 9억8000만∼10억5000만원, 전용 84㎡는 지난달 11억8000만원에 급매물이 거래됐다.
■ 가격 오르자 다시 관망…“상승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싼 매물 위주로만 거래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급매물 소진 이후 낙폭이 다소 둔화할 수 있으나 상승 반등 움직임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거래 동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임대사업자 대출이 막힌 이후에는 매수세가 확연히 줄었다”며 “시세보다 아주 싼 급매물 아니고는 (매수 대기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6월 1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과 시점을 앞두고 일부 급매물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양도소득세 부담이 큰 다주택자들이 쉽게 집을 팔 수 없기 때문에 증여나 임대사업자 등록 등 다른 절세 방법을 택하겠지만 전셋값 하락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도권 갭투자자들은 주택 수를 줄이는 차원에서 6월 1일 이전에 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 김규정 부동산전문위원은 “내년부터는 1주택자도 2년 거주해야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주가 어려운 매물이 올해 말까지 추가로 나올 수 있다"며 "한동안 집값이 오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급하게 갈아타기를 해야 하는 수요가 아닌 이상 집을 사려고 하지 않아서 급매물도 거래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