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지하철 4호선 정왕역 1번 출구 앞. 횡단보도 건너로 시커멓게 바랜 철조망 안쪽에 축구장만한 공터가 보였다. 이 땅은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 시범 사업지다. 이곳은 ‘정왕동 어울림 스마트안전도시’ 개발사업 예정지다. 정부가 사업비 3426억원을 책정해 신혼희망타운 등 공공주택 960가구와 젊음의 광장을 짓는다.
정부 계획이 발표된 것은 2017년 말. 하지만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왕동 일대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빈땅에는 쓰레기와 잡초만 가득했고 일부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땅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일부는 사유지다. 주민 박모(60)씨는 “시흥시가 토지주 10여명과 땅 매입 협의를 하지도 못했다고 들었다”며 “주민들은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별로 기대도 없다”고 했다.
시흥시 ‘어울림 스마트안전도시’는 도시재생뉴딜 사업 중에서도 사업비 3426억원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중심시가지형’이다. 시흥시 측에 “도시재생뉴틸 사업이 진행된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윤찬종 시흥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은 “작년까지 계획을 수립하느라 1년이 지났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시범사업 발표 후 1년 5개월째 “계획 수립 중”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하며 “연간 10조원씩 투입해 매년 100곳, 임기 내 500곳에 대해 도시 재생 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해 12월 60곳의 시범사업지를 발표했다. 지난 8일 2019년도 상반기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지 22곳을 발표한 것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선정된 곳이 총 190여곳에 달한다.
하지만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지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도 도시재생 뉴딜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석기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까지 실제 집행된 예산은 29억원에 불과했다. “연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임기 내 500곳에 대해 도시 재생 사업을 펼치겠다”는 정부의 약속 자체가 애초에 무리한 일정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기복제식 사업에 50조 투입… “실효성 검토도 없어”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다. 정부가 내놓은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실효성 자체가 의문이라는 얘기도 많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국내 1호 도시재생사업 지구인 서울시의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을 모델로 한다. 그러나 2014년 이후 200억원이 투입된 이 지역에서는 도시 재생에 따른 효과를 조금도 체감할 수 없다.
창신·숭의동 도시재생의 핵심인 ‘봉제거리박물관’은 봉제공장 역사나 작업 과정 같은 것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붙여놓고, 봉제산업 역사를 조명하는 봉제역사관을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봉제산업을 지역 특성 산업으로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온데간데 없다.
정부는 지난 8일 2019년도 상반기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안을 발표하며,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시장과 금천예술공장 일대 등 22곳을 새로 선정했다. 그러나 사업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발표된 곳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자기복제식 계획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전형적인 ‘정권 주도형’사업이어서 대통령이 바뀌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보금자리주택’사업, 박근혜 대통령 시절 ‘뉴스테이’가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진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토부 공무원들도 초기에는 대통령 눈치를 보고 강력하게 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앞장서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 사업을 뒷전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식에 따른다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말만 믿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호재로 믿고 투자를 했다가는 소위 ‘쪽박’을 찰 가능성도 크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내려보내니 ‘마을 사업으로 청년 일터를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식의 비현실적이고 일률적인 계획들만 나온다”며 “1년에 10조원씩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데도 성과를 검토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