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방 부동산 초토화됐는데…나홀로 끄떡없는 호남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19.03.24 05:00

정부가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6개월여가 지났다. 역대급 고강도 규제책으로 서울 집값이 18주 연속 하락하고 주택 거래량도 지난해보다 10분의 1토막났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 물량까지 쌓이는 등 서울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전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호남 지역만 하락세에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13 부동산 대책 이후 6개월간 주요 지역 아파트값 변동률. /한국감정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지방 아파트값은 평균 1.69% 떨어졌다. 수도권 변동률(-0.20%)보다 하락 폭이 8배 이상 크다. 전국 하락률 상위 10곳을 보면 경남 김해(-7.67%)·울산 북구(-7.32%)·울산 동구(-7.10%)·청북 청주(-6.81%) 등으로 모두 지방이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한국감정원


하지만 호남은 예외다. 지난 2월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보면 광주광역시(103.8)가 서울(108.1)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높았다. 전남·북 아파트 가격도 마찬가지다. 전주· 여수·순천 등 대도시 위주로 집값이 올라 호남 전체 집값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7개도 중 전남(102)과 전북(97.7)이 나란히 매매가격지수 1, 2위를 차지했다.

미세하게 들여다 보면 호남에서도 차이는 있다. 예를 들어 단기간에 집값이 급등했던 광주 봉선동이 대표적. 봉선동의 일부 새 아파트에선 84㎡(이하 전용면적) 주택형이 10억원 넘게 팔리기도 했지만 현재 하락세다. 지난해 9월 8억5000만원(14층)에 거래됐던 ‘봉선동제일풍경채엘리트’ 84㎡ 가 1월 7억6000만(10층)~7억8000만원(11층)에 팔렸다.

하지만 광주 아파트 시장 전체로 보면 여전히 오름세다. 유례없는 지방 부동산 침체기에도 호남 집값만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뭘까. 땅집고가 분석했다.

■공급 갈증이 호남 전체 집값 끌어올려

최근 5년간 호남 지역 아파트 입주량./부동산114


최근 10년간 호남권 주택 공급량은 바닥 수준이었다. 별다른 개발 호재가 없어 2013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호황기에도 아파트 공급이 거의 없었던 것. 지난 5년간 평균 입주 물량을 보면 광주 1만570가구, 전북 9850가구, 전남 1만1600가구였다.

인구가 비슷한 충북과 강원의 경우 지난 한해에만 각각 2만5000가구, 1만8500가구가 입주했다. 7개 도의 미분양 주택을 보면 전북(1567가구)과 전남(1427가구)이 나란히 최하위일 정도로 공급 갈증이 심했다.

주택 대기 수요가 몰린 상황에서 새 아파트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호남의 신도시·산업단지 인근 동네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 대한 갈증이 심해 광주 첨단지구·수완지구, 전주 혁신도시·만성지구, 여수 웅천지구 등의 새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전북 전주 혁신지구에 들어선 아파트. /이지은 기자


과학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광주 첨단지구에선 지난해 3월 3억8300만원에 거래되던 ‘광주첨단2지구 호반베르디움’ 84㎡가 올해 3월에는 4억1000만원에 팔렸다. 한국국토정보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이 이주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난 전주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2013년 입주한 ‘전북혁신우미린1단지’, ‘호반베르디움’ 84㎡는 입주 직후인 2013~2014년 2억2000만~2억3000만원 선에 거래됐는데 지난해부터는 3억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전주 혁신도시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새 아파트 공급량이 워낙 적은 호남에서는 오래된 아파트 가격은 별로 내리지 않았다”며 “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오르니 전체 지역 집값 수준이 덩달아 올랐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지방 울어도 호남은 ‘아직까진 살만해’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LG화학 공장(왼쪽), 롯데케미칼 공장. /LG화학, 롯데케미칼 제공


호남 지역 대도시들은 지역 산업 침체 영향을 덜 받고 있는 것도 이유다. 현재 지방 중 경기 불황이 가장 심한 곳은 거제·울산을 비롯해 조선·철강 단지가 있는 영남권이다. 하지만 전남에 있는 국가산업단지들은 대부분 석유화학업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업계 매출액은 2016년 대비 40.6% 증가했다. 수출 증가 폭도 석유제품(33.5%)·반도체(29.4%)·컴퓨터(17.2%)·석유화학(12%) 순으로 높게 나타나 사실상 반도체 산업과 함께 흑자 성장을 내고 있는 유일한 산업군인 셈이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이지은 기자


전북의 경우 GM공장이 철수한 군산이 지역 전체가 침체될 정도로 타격을 입긴 했다. 하지만 전주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도 전체 차원에선 경기 불황의 여파가 덜한 편이다. 2016년부터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은 해마다 1000만명을 넘기고 있다. 관광객 1000만명은 경기 용인, 전남 여수 등 전국구 관광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수치다.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예타면세 대상 사업./국토교통부


올 1월 정부가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지역에 따라 안분해 발표했다. 강원~충청~호남을 연결하는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 전북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 등을 발표한 것. 정부가 예타면제 사업을 지역에 따라 안분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개발 사업이 없었던 호남 입장에선 다른 지역에 비해 영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향후 분양 물량 적어…조정기 와도 집값 튼튼할 것”

지방 집값 하락세를 비껴가고 있는 호남이 앞으로도 선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경기 전반이 침체되는 가운데 호남 집값만 오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다만 가격이 동반 하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현배 내외주건 과장은 “광주를 비롯한 호남권은 워낙 새 아파트 공급이 적어 기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려는 수요도 풍부한 지역”이라며 “향후 3년 정도 잡혀 있는 분양 물량도 많지 않아 집값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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