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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이 좋아하는 건물을 만들어야 성공한다"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19.03.19 06:00 수정 2019.05.01 20:28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라이프스타일 잘 파악하는 건축주가 성공합니다”

“내 건물이라고 내맘대로 짓는 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수익형 건물은 다른 사람이 살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공간인 만큼 내가 아닌 ‘남’이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에이코랩


‘DMZ 평화공원 마스터플랜 연구’. ‘철원 선전마을 예술가 창작소’ 등 공공건물 리모델링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40). 그는 “건축주라고 해서 건물 주인이 무조건 ‘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수익형 건물의 건축주가 되려면 우리 사회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트렌드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동양대 디자인학부 조교수인 정 대표는2015년 도시 미술 프로젝트인 ‘2015 서울서울서울’을 공동 기획했다. 2016년 제 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과 베이징 디자인위크 한국관 큐레이터로도 참여해 주목받았다. 

―건물 용도를 정하는 기준이 과거와 달라졌다는데.
“그렇다. 과거에는 땅 위치와 용도에 따라 건물 용도를 결정했다. 주택가에는 주택을, 번화가에는 상가를 만들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최근엔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속칭 ‘꼬마빌딩’이 번화가가 아닌 일반 주택가에도 속속 들어서는 것이다. 꼬마빌딩은 윗층에 집을 넣고 아랫층엔 카페·식당 등 상가를 들이는 근린생활시설이 대부분이다. 결국 도시 중심가에 국한했던 상업 공간이 작은 마을까지 뻗어가는 것이다. ”

저층은 상가, 고층은 집으로 쓰는 상가주택이 최근 수익형 건물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에이코랩


―대표적인 사례를 든다면.
“전통적인 젊음의 거리였던 홍대 상권을 들 수 있다. 홍대 상권이 점점 확장하면서 주택가였던 마포구 상수동이나 망원동이 신흥 상권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한강을 건너 영등포구 문래동까지 이어지면서 일대 주거 지역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성동구 성수동 역시 예전에는 소규모 공장과 베드타운만 있었다. 언젠가부터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공공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숲 거리’, ‘수제화 거리’ 등 번화가로 변신하고 있다.”

한적한 주택가와 철물점이 들어선 문래동 거리에 호프집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들어서 눈길을 끈다. /김리영 기자


―왜 이런 변화가 생긴건가.
“결국 1인 가구 증가 등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예전엔 주택가 근린생활시설에는 빨래방이나 슈퍼마켓, 책방만 있으면 충분했다. 큰 상권은 백화점이나 마트가 있는 중심지에서만 발달했다. 그런데 1인 가구는 집에서 멀리 가기보다 걷거나 자전거로 찾을 수 있는 가게를 더 선호하게 마련이다. 소위 ‘먹방’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작지만 개성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문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영향도 있다.”

―건물 용도를 정하고 나면 신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건물 상태에 따라 다르다. 구조적으로 심폐소생이 불가능하다면 신축해야 한다. 하지만 건물의 디테일한 장식이나 스토리가 살아있어 그것만으로도 건물 가치가 올라가는 요소가 된다면 리모델링을 고려할만하다.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일본식 주택의 리모델링 이전(왼쪽)과 이후 예상 모습. /에이코랩


리모델링과 신축이 동시에 진행 중인 청파동 일본식 주택. /노경(Rohspace)


서울 용산구 청파동 3가에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가옥이 있다. 지은 지 100년이 가까워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무조건 헐기보다 리모델링하면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건물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이 일본식 가옥은 내부 디테일을 잘 살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이며 남는 부지에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리모델링과 신축의 장점은 무엇인가.
“리모델링은 주차대수와 건폐율에서 과거 건축법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용산구 청파동 일본식 주택의 신축 건물 주차공간. 신축 건물에는 법규상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주차공간이 있다. /에이코랩


건축물은 준공 당시 법규를 적용하는데 최근 주차장법은 예전보다 엄격해 주차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신축하면 주차장 때문에 임대 공간이 줄어든다.

건폐율도 마찬가지다. 건폐율이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건물이 대지에서 차지하는 부분을 말한다. 접근성 좋은 1층에 임대 공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수익성과 직결된다. 과거 법규에 따른 건폐율이 요즘보다 더 높다.

예를 들어 유동 인구가 많은 상가 건물이라면 기존 1층 공간의 면적이 줄어들지 않는 리모델링이 유리하다. 반면 주차 공간이 많아야 수익이 나는 건물이라면 신축이 낫다.

비용면에서도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항상 저렴한 건 아니다. 건물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거나 관리가 안됐다면 신축보다 공사비가 더 많이 들 수 있다.

경기 양평군 대심리에 신축한 단독주택. /이동엽 작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지상 2층으로 리모델링한 '골목 끝 책방'. /노경(Rohspace)


―예비 건축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축주 요구 사항을 설계에 그대로 반영해주는 건축가도 좋다. 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 상권의 변화, 공간 트렌드를 잘 이해하는 건축가와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전보다 시장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집을 짓기만 해도 수익이 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수익형 건물을 만들려면 반드시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전문가 손길을 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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