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 대로변 상가 1층에 있는 한 스타벅스 매장. 스타벅스는 2011년 보증금 2억원, 월세 1150만원을 내기로 하고 이 건물에 입점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이 스타벅스 매장의 월세는 최초 계약 당시보다 250만원 낮은 900만원이다. 지난해 월세를 내리는 조건으로 재계약했기 때문이다. 통상 상권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가 임대료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오르거나 최소한 같은 조건으로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논현동 스타벅스 건물은 상권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임대료만 뚝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스타벅스는 건물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임차인으로 꼽혀왔다. 보통 5년 이상 장기 계약해 공실 걱정이 없는데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 매장을 찾는 고객이 끊이지 않아 건물 전체가 살아나는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 투자자들 역시 스타벅스 매장을 끼고 있는 건물은 보증 수표로 볼만큼 ‘스타벅스 효과’를 믿었다. 실제로 개그맨 박명수(47)씨 부부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매입한 빌딩 전 층에 스타벅스를 입점시킨 후 3년만에 되팔아 1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앞으로 스타벅스 효과만 믿고 건물 투자에 뛰어들면 위험한 투자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스타벅스는 임대차 계약을 할 때 건물주에게 월세 산정 방식으로 2가지를 제시하는데, 스타벅스의 브랜드 파워가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지금은 두 선택지 모두 건물주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에 차이는 게 스타벅스”…직영이라 거리제한도 없어
건물주는 스타벅스와 최초 임대차 계약할 때 해당 매장의 월 매출액 일부를 월세로 받거나 고정 월세를 받는 방식 중 1개만 고를 수 있다. 계약 후 임대료 산정 방식 변경은 불가능하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국내에선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하는 비율은 반반 정도다.
우선 임대료로 월 매출액의 일부분을 받기로 결정한 ‘수수료 매장’을 살펴보자. 보통 유명 상권에 있는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들이 이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들어선 스타벅스 매장은 잘 될 수밖에 없다고 믿고, 매출이 감소한 달에는 그만큼 월세 수익이 줄어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타벅스 매장이 너무 많아져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는 게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커피전문점이 가맹점을 낼 경우 출점·거리 제한을 적용하고 있는데, 전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이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펴고 있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은 1250여개로 세계 5위에 달한다.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개점한 이래 스타벅스는 점포 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2008년 270개였던 매장이 2018년 말에는 1250개로 늘었다. 10년 만에 4.6배 정도 증가했다.
스타벅스의 공격적인 출점 전략으로 일부 블록에선 건물 하나 건너 매장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몰려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주변에 스타벅스 매장만 6개인데, 매장 간격이 걸어서 30초~1분일만큼 빽빽하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인근에도 매장 6개가 몰려 있다.
유명 브랜드라도 매장 간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고 매장 수가 많으면 매장당 매출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이 경우 매장별 매출은 전보다 감소해 해당 건물주의 임대 수익은 줄지만 모든 매장의 매출액 합계는 증가해 스타벅스 본사만 이득을 보게 된다.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 스타벅스측은 매출 감소를 근거로 수수료율을 낮추자고 제안한다.
빌딩전문 중개업체인 ‘빌딩드림’ 김영정 이사는 “5년 전만 해도 건물주가 월 매출의 17~18%를 임대료로 가져가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12~13%가 일반적일 정도로 수수료율이 확 낮아졌다”고 말했다.
■ ‘슈퍼 갑’(甲) 스타벅스 “월세 안 낮추면…”
그렇다면 고정 월세를 내기로 계약한 경우는 어떨까. 보통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거나 대출을 많이 끼고 빌딩을 매입해 매달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건물주들이 고정 임대료 방식을 택한다. 이런 건물주들 역시 재계약 시점에 스타벅스의 임대료 인하 압박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세 협상 과정에서 ‘폐점하더라도 근처에 다른 매장이 많으니 괜찮다’거나 ‘인근 건물로 옮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보통 스타벅스 매장은 접근성이 좋은 상가 1층에 입점한다. 1층 뿐 아니라 2~3층을 함께 쓰거나 아예 통으로 임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키 테넌트(key tenant·핵심 세입자)’ 자리를 차지한 스타벅스는 5~10년 후 건물 가치가 상승했는데도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동결하거나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갑(甲) 세입자가 된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당장 월세 수입이 줄어도 공실 발생을 피하기 위해 스타벅스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건물에 스타벅스를 세입자로 받은 A씨는 2013년 스타벅스와 첫 임대차 계약 당시 보증금 3억원, 월세 1350만원 조건이었다. 5년 후인 2018년 임대 기간을 2년 연장하는 변경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2020년 이후 월세를 1100만원 정도로 ‘무조건 인하’하는 조건을 달았다.
여전히 스타벅스는 우량 임차인이여서 매장이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상권 신뢰도가 높아져 건물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스타벅스 효과가 과거보다 줄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정 빌딩드림 이사는 “스타벅스 매장을 임차인으로 들일 경우 임대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며 “앞으로 스타벅스 매장이 계속 늘어나면 희소성이 사라져 건물 가치 상승 효과도 예전만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빌딩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선 건물주도 브랜드를 보는 눈을 길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고객 충성도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아직 낮은 ‘알짜 점포’나 전도 유망한 신생 브랜드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