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율이 높은 지방은 물론, 지금까지 고령화율이 낮았던 대도시권도 향후 급속히 노인 인구가 증가할 것이다. 특히 동시에 대규모로 건설한 신도시에서는 당시 입주 한 세대가 일제히 퇴직·고령화하는 것이 문제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국토교통성과 후생노동성이 공동 발표한 ‘안심주거공간 창출 프로젝트’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2026년 65세 이상 인구가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우리보다 10여년 먼저 경험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당시 일본 상황은 2018년 현재 우리와 딱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에서 주거 공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일본에서는 다양한 고령자 맞춤형 주거 모델이 나오고 있다.
■ 일본, 고령자 주택에 난간·미끄럼 방지판 설치
일본은 ‘안심주거공간 창출 프로젝트’ 발표 이후 노인을 위한 주거 공간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일본 정부의 목표는 단순하다. 허약하거나 장애가 있는 노인이 자기 집에서 계속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 요양 병원에서 노인을 돌보는 것보다 자기 집에 살면서 병원을 왕래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65세 이상으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에게 주택 개·보수 공사를 지원한다. 혼자 걷기 어려워 휠체어를 타는 노인을 위해 ▲화장실과 계단 등에 손잡이나 난간 설치 ▲집 안의 턱 제거 ▲휠체어 진입 슬로프 설치 지원 ▲방문 손잡이를 돌릴 힘이 부족한 것을 고려해 미닫이문 설치를 도와준다. 비용은 일본 개호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이 부담한다. 2015년 현재 고령자가 사는 주택 48만채를 개보수하는데 4510억원을 지원했다.
일본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고령 친화 콘셉트로 설계한 노인전용 주택단지도 많다. 이런 주택의 경우 일종의 고령자 셰어하우스(share house)와 비슷하다. 각자 방에 살면서 식당과 거실, 재활치료실, 다목적실 등은 같이 쓰는 것이다. 입구부터 로비와 복도를 지나 자기 집 현관이나 거실, 베란다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디에도 턱이 없다. 복도는 휠체어 두 대가 지나가도록 넓고, 한쪽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일본의 일반적인 주택가에도 노인이 이동하는데 걸림돌이 없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환경이 쉽게 눈에 띈다. 교차로·길거리 상점 입구 간에 보도와 길 사이에 턱이 없고, 음식점 현관도 턱이 없다.
■ “영구임대만 공급하는 한국, 노인 맞춤주택 늘려야”
한국에서도 노인 맞춤형 주거 공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열린 ‘주거복지포럼’ 토론회에서 정소이 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노인 주거 생활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독거 노인이나 고령자 부부로 구성된 가구(전체 고령자 가구의 66%)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1인당 주거 면적이 넓고 평균 거주기간은 길며, 주거 이동률은 낮다. 결국 대부분 시간을 오랫동안 살던 자기 집에서 혼자 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정부의 고령자 주거복지 정책은 저렴한 영구임대 아파트 공급에만 쏠려 있다. 이 아파트는 대다수 노인은 입주가 불가능하다. 저소득층만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민간에서 노인 맞춤 주택을 공급하지도 않는 실정이다. 민간기업들은 부유한 노인을 겨냥한 실버타운만 공급한다.
정 연구원은 앞으로 노인 주거복지 정책 방향으로 일본 같은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제시했다. 노인들이 누구나 ‘자기 집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사는 집을 고령자 맞춤형으로 개조하고 가사와 응급지원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령자 건강과 소득 수준, 가족 구성에 맞는 다양한 주거 모델을 개발해 공급하고 도시재생과 재건축 과정에서 무장애 설계를 적용한 고령자 주택 건설을 의무화하는 것도 해법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청년층의 낮은 취업률과 출산율 탓에 노인들이 본인 뿐 아니라 자녀 세대까지 부양하는 이중(二重) 부담을 지고 있다”면서 “새로 만드는 노인 친화 주거단지를 지역 사회 고령자들을 위한 복지 서비스의 거점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