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서울에서 상권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거나 쇠퇴한 지역은 어디일까. 땅집고는 삼성카드와 함께 2015년과 2017년 2년간 업종별 가맹점 수와 건당 거래 금액 등을 바탕으로 최신 상권 트렌드를 집중 분석했다.
[빅데이터로 본 상권] ④ 3년 만에 식당 간판 다 바뀌어…“되는 곳만 된다”
서울 강남구 역삼1동 지하철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의 한 상가. 3년 전인 2015년 12월 이곳 1층에는 찹쌀순대전문점, 2층은 일식(日食) 주점이 있었다. 건너편 상가 1층에는 치킨집이 있었다.
2018년 12월 현재, 이 식당들 간판은 모두 바뀌었다. 지난 10일 오후 찾아가 본 이 상가 1층에는 경양식 호프집이, 2층에는 새우 요리 전문점이 있었다. 건너편 1층에는 일본 카레 전문점이 보였다. 주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순대 전문점은 중간에 오징어 요리 전문점으로 바뀌었다가 최근에 호프집이 들어왔다”며 “장사가 잘되는 집만 잘되니 자고나면 식당 간판이 바뀌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 1동은 서울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강남역과 가까운 서울 최대 상권 중 하나이다. 삼성카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식당 숫자만 2007개. 이 지역 전체 점포(3684개)의 절반을 넘을만큼 많다. 영업도 여전히 잘되는 편이다. 2015년 대비 2017년 역삼1동 식당의 점포당 매출은 39%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식당이 다 잘되는 건 아니다. 이날 둘러본 역삼1동 일대 식당 중에는 이른 저녁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곳이 있는 반면, 오후 7시가 돼도 좌석이 반 이상 빈 곳도 많았다. 폐업하는 식당이 많은 탓에 간판이 수시로 바뀌고, 전체 점포 수도 2년새 137곳 줄었다. 이재형 삼성카드 차장은 “식당은 잘되는 곳만 점점 잘되고, 안되는 곳은 망해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식당 숫자는 줄어도 전체 매출은 증가
삼성카드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2017년 서울 전체 자영업 점포는 17만3000여개에서 17만8000여개로 약 3% 늘었다. 하지만 전체의 절반 정도인 식당은 9만여개에서 8만8000여개로 오히려 3% 줄었다. 역삼1동(-6%)이나 논현1동(-3%) 등 성숙한 상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식당업이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업 전체 매출액은 같은 기간 23% 늘었다. 전체 업종의 매출 증가와 비슷하다. 점포 수는 줄고 전체 매출은 늘어 결과적으로 점포당 매출액은 27%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 자체가 더 힘들어진 셈이다.
주목할 점은 같은 기간 커피 전문점 숫자 역시 36% 증가했다는 것이다. 폐업한 식당이 상당부분 카페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역삼1동 역시 식당은 137곳 줄어드는 동안 카페가 82곳 늘었다. 이재형 차장은 “과거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요즘엔 빵이나 케이크 같은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함께 파는 카페가 늘어나는 트렌드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고급화 성공한 청담동, 건단가 18% 뛰어
식당업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가맹점 1곳당 매출이 높아지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카드 결제 1건당 매출(건당 매출)이 높아지면서 전체 점포당 매출(점당 매출)이 높아지는 경우 ▲건당 매출은 낮아도 점당 매출은 높아지는 경우 두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건당 매출과 점당 전체 매출이 동반 상승한 곳은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남구 청담동이 대표적. 2017년 1건당 단가 6만4000원으로 건당 매출이 2년 전보다 18% 정도 올랐다. 이는 서울 전체 상권을 통틀어 가장 높은 건당 매출이다. 전체 점당 연간 매출도 같은 기간 46% 늘었다.
종로구 청진동 역시 새로 생긴 대형 업무빌딩 안에 들어선 상가 중심으로 주변 지역 고급 음식 수요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이 지역은 건당 단가가 3만5000원으로 2년 전보다 5% 상승했고, 점당 매출도 143% 신장했다.
반대로 성동구 성수2가3동 일대 성수동 카페거리는 건당 단가가 41% 감소(1만5600원)했지만 점포당 매출은 172% 늘어 상승률이 서울 전체에서 가장 컸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나 서대문구 남가좌동, 서초구 우면동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재형 삼성카드 차장은 “주로 특색 있는 거리로 유행을 타면서 단체 회식보다 연인이나 친구 등 2~3인 정도 소규모 인원이 찾는 곳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 “식당 창업, 가진 돈보다 상권에 맞춰라”
식당 창업을 고려하는 자영업자라면 우선 새로운 업무지구가 생기거나 ‘핫플레이스’(hot place·뜨는 곳)로 유명세를 타며 확장하는 상권을 선점하는 방법이 좋다. 최근 2년새 강서구 마곡동(373곳)이나 송파구 문정동(259곳), 마포구 연남동(313곳) 등이 상권 확장으로 식당 수가 늘어난 지역이다.
하지만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식당 수가 줄고, ‘되는 곳만 되는’ 현상이 심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막연히 식당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자본 규모에 맞춰 점포를 구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한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식당도 엄연히 창업인만큼 유동 인구나 경쟁 점포를 철저히 살펴본 후 ‘대학가 고깃집’ 처럼 그 상권에 꼭 필요한 업종을 골라야 한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장사를 접더라도 다른 임차인이 빨리 들어올 수 있는 목 좋은 곳을 택해야 실패해도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