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건축가상 수상자를 만나다] 인공지능·빅데이터로 집 짓는 '경계없는작업실'
“목표 수익률을 맞춰줬더니 건축주 반응이 달라졌죠. 건물의 아름다움이나 공공성 같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건축주들이 먼저 ‘동네에 기여하는 건축물이면 좋겠다’, ‘랜드마크적인 건물이 되면 좋겠다’라면서 욕심을 내더라구요. 신기했어요.”
흔히 건물을 지을 때 공공성과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실제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건축주는 돈을 벌고 싶고 건축가는 의미를 담은 건물을 짓고 싶어한다. 건너기 어려운 평행선이다.
하지만 이런 통념을 뒤엎은 건축가 그룹이 있다. 2018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건축사사무소 ‘경계없는작업실’의 문주호 대표는 “아름다움과 공공성, 수익률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경계없는작업실은 문주호 대표와 서울대 건축학과 03학번 동기인 임지환(34·제로투엔 대표), 조성현(36·스페이스워크) 파트너가 뭉쳐서 만들었다. 개업 4년도 안돼 20건에 이르는 건물을 완성했다. 건축주 입장에서 수익률과 미적 가치를 모두 잡는 건축 방식으로 호응을 얻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비밀무기’가 바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토지개발 솔루션 ‘랜드북’이다.
땅집고는 최근 젊은건축가상 시상식이 열렸던 제주도에서 이들을 만났다.
-4년 만에 생각보다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비결이 있다면.
▶문주호: 설계할 때 시장의 관점에서 봤다. 기획설계와 투자검토, 토지매입, 부동산 금융 등 파트너사와 함께 하고, 단지 미적 요소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률을 맞추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했다.
수익률은 자체 개발한 ‘랜드북’ 솔루션을 활용했다. 랜드북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해당 부지 주변의 개발 패턴을 분석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설계를 뽑도록 도와준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나.
▶조성현: 특정 필지를 개발할때 유사한 10개의 필지를 찾아 예상 비용과 수익을 산정한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엘비스(Lbis)’가 필지의 높이제한, 용적률, 건폐율, 해당 법규 등을 검토해 3D 모델링을 제작한다.
이를 통해 건물 개발에 필요한 토지매입비와 건축비를 산정하고 개발 후 원하는 목표 수익금을 입력하면 총 수익금이 나온다. 클릭 몇 번이면 끝난다. 사업성 분석 자동화를 통해 어떤 땅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쉽게 보여주는 것이다.
랜드북을7년에 걸쳐 개발했다. 주로 가로주택정비사업 같은 소형주택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도시공사도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함께 베트남에 사회주택를 짓는데 필요한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현재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해당 필지 반경 150m 이내에 인허가를 받았거나 신축 중인 건물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건축 수익률을 얼마나 맞춰줬길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문주호: 수익률은 연 7~8%를 얘기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지은 ‘테트리스하우스’는 연 12%까지 수익이 났다. 땅을 잘 샀고 설계 역시 용적률을 극대화하면서도 미적 요소를 버리지 않은 게 잘 맞아떨어졌다.
▶임지환: 수익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세가지 요소는 건물 층고와 외장재, 창호다. 견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목표 수익률이 있으면 이에 맞춰 견적을 뽑는다.
▶조성현: 개발 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물을 원룸으로 할지, 주차대수를 줄이고 저층부 상가를 넣을 지 등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짠다. 비용 계획이 항상 완벽하게 들어맞는 건 아니어서 때로는 공간 가치를 극대화해 수익률을 맞추기도 한다.
-각자 지향하는 건축은 어떤 것인가. 의견 차이는 없나.
▶임지환: 개인적으로 맥락에 맞는 건축을 선호한다. 단독주택이나 상가, 호텔 등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건축물을 똑같은 맥락으로 설계할 수 없다. 건축가는 배우와 같다고 본다. 작품에 따라 모습을 변신시키는 카멜레온 같은 속성이 있다. 시장 관점에서 수익도 중요하고 미적인 가치도 포기하지 않는 건축물을 짓는 것이 필요하다.
▶문주호: 기술을 통한 건축으로 서로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술 자동화로 인해 건축가가 신경써야 할 에너지 분산을 막고, 좀 더 창의적인 공간에 대해 고민할 시간도 늘려준다.
▶조성현: 다수를 위한 건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좋은 건축물이 많이 나오려면 입지전적인 디자이너 여럿이 나오는 것도 좋겠지만 잘 짜여진 시스템에 따라 제품화한 공정과 상품이 나오는 것도 방법이다. 더 많은 이들이 공간을 상품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앞으로 건축은 어떻게 변화할까.
▶문주호: 젊은건축가상 심사에서 심사위원 한 분이 “경계없는작업실은 ‘업자’에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10년전만 해도 건축가가 부동산 개발 수익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대의 요구에 맞춘 화두를 꺼냈더니 건축계 내부에서도 응원하는 것 같다.
▶조성현: 어떤 지역의 건축 문화를 결정하는 것은 그 지역의 상위 건축물이 아니다. 실제로는 중위권과 하위권 건축물들이 그 지역을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상위권 건축은 이미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탄다고 해서 도시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 이를 개선하려면 H&M이나 유니클로 같은 보급형 건축이 발달해야 한다. 앞으론 모듈러 주택(prefab) 등이 발달해 중하방의 실력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산업이 진화하지 않을까 싶다.
▶임지환: 2013년 이후 저금리로 소규모 개발이 크게 늘었다. 신축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이 시점부터 우리 건축이 변했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새롭게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붉은 벽돌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건축주 마인드 역시 바뀌는 것 같다. 수익률을 맞춰주면 건축주 스스로 아름다움과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축주들이 먼저 ‘동네에서 랜드마크가 됐으면 좋겠다’, ‘동네에 기여를 하는 건축물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수익률 엑셀표를 보여줬더니 달라지는 현상이다.
-앞으로 계획은.
▶문주호: IT기술에 집중하려고 한다. 기술을 고도화해 정보와 가치를 제공하고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사명이다.
정책 제안도 하고 싶다. 가령, 가로주택정비사업 대상이 되는 사업지 분포는 국토교통부도 전체를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 데이터가 있다면 사업이 시급하고 지원이 필요한 곳을 추리기가 쉽다. 정책자금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건축 법규를 바꾸기 전에 미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시에 어떤 변화가 생길 지 파악할 수도 있다.
지난해 서울 대치동에 땅을 사서 직접 분양도 마쳤다. 기획, 설계, 시공의 전 프로세스를 통합하는 것이 목표다.
서울엔 질좋은 주거 상품을 계속 공급해야 하는데 대규모 재개발로는 한계가 있다. 질 높은 빌라와 단독주택, 1개동 규모 아파트 같은 소형 개발이 활성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