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현일의 미국&부동산] 3년간 끝 모르고 치솟던 美집값이 심상찮다
미국 집값이 불안하다. 최근 부동산중개 웹사이트를 통해 주변 집값을 알아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가격 내림’(price drop)이 붙은 물건이 급증한 것. 그것도 수 천 달러가 아닌 일제히 약 2만 달러를 내렸다. 약 5% 인하에 해당한다. 주택매매 비수기인 가을철임을 감안해도 낙폭이 크다.
그래서 집값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달라스-포트워스 지역에서 매물로 나온 주택의 경우 약 19%가 한 번 이상 가격을 내렸다. 일시적 현상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3년 이상 끝모르고 오르던 주택 가격에 제동이 걸렸다. 이는 달라스만이 아니다. 미국 주요 지역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간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35개 대도시 중 절반이 가격 조정
질로우(Zillow)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체 주택 매물의 14%가 가격을 인하했다. 이는 2016년 말 11.7% 이후 가장 높다. 주택 가격 상승세도 미국 내 35개 대도시권 중 거의 절반에서 정체를 보였다. 레드핀(Redfin)에 따르면 지난 9월 16일 기준 4주 동안 시장에 나온 주택 매매 물건 중 4분 1 정도가 가격을 내렸다. 이는 이 회사가2010년 집계를 시작한 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물론 시장에 따라 차이는 난다. 샌디에이고의 경우 전체 매물 중 20%가 가격을 내렸다. 1 년 전 12%와 비교하면 8% 증가했다. 미국 내에서 주택 시장이 가장 '핫'하다는 시애틀은 12%가 가격을 조정했다. 평균보다 낮지만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노스웨스 멀티플 리스팅 서비스에 따르면 시애틀의 경우 지난 5~8월 집값이 평균 7만달러나 하락했다. 이 지역 중간 집값은 76만 달러다. 그럼에도 샌안토니오, 피닉스, 필라델피아, 휴스턴 등은 1 년 전과 비교해 가격을 낮춘 매물 비율이 줄었다.
■바이어스 마켓으로 이동
미국은 주택 매물이 올라오면 관심 있는 잠재 구매자들이 물건을 직접 보고 일정일까지 가격과 여러 조건을 담은 매입 제안서를 내게 된다. 제안 가격은 판매자가 정한 리스팅 가격(Listing price)을 참고로 구매자들이 정한다. 판매자는 이 중 가장 좋은 조건을 고르게 된다. 올초만 해도 리스팅 가격에 프리미엄으로 1만~3만 달러를 얹어 제안해야 낙찰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다. 이를 미국에서는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라 부른다.
하지만 집값 상승이 주춤하고 수요가 줄면서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지금 하우스 헌팅에 나서면 가격을 더 많이 깎을 수 있고, 주택 수리 같은 추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집값이 최근 3개월새 7만 달러나 하락한 시애틀의 경우 시장에 나온 재고 주택이 2014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1년 전보다 단독주택 매물은 86%나 늘었다. 콘도미니엄 매물은 161 % 증가했다. 그만큼 팔리지 않은 집이 시장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 대상으로 지난 8 월 실시한 로이터 설문(Reuters Poll)에 따르면 지금부터 1년 동안 약 550만 채의 주택이 팔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지난 5월 조사보다 10만 채 줄어든 것. 2005년 정점을 찍었던 700만 채보다 크게 떨어졌다. NAR(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존 주택 판매는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5개월 연속 하락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연 5% 육박
이렇게 주택 시장이 차가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는 이자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4%를 밑돌던 30년 만기 고정 금리가 이제 5%에 육박한다. 지난 10년간 최고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결정의 기준이 되는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지난 9월 25일 현재 연 3.09%다. 1 년 전만 해도 연 2.2%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주택 구매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
최근 몇 년간 올라도 너무 오른 집값도 소비자들에게 주택 구매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케이스-실러 주택 가격 인덱스에 따르면 주택 가격은 이미 지난 1월 금융위기 전 거품기를 넘어섰다. 로이터 설문에 따르면 주택구입 부담지수는 ‘7’(1 이 최저, 10이 최고)로 작년 동기 ‘6’보다 상승했다.
■주택 공급은 여전히 부족
시애틀 지역의 부동산중개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주택 가격 하락과 이자 상승이 겹친 이 시기의 자기 고객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첫째는 스탑(Stop) 유형이다. 주택 구입을 보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그룹이다. 둘째는 고(Go) 유형이다. 가격을 최대한 깎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은 속도조절(Slow down) 유형. 주택 구매 결정에 좀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주택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주택 시장은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중국 등과의 관세 전쟁으로 자재값이 상승하면서 건설사들이 공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아직은 주택 시장이 조정기로 완전히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