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가파르게 오르자 집주인·공인중개사 갈등도 폭발
"우리 아파트가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조금 귀찮더라도 부지런히 네이버 부동산 매물을 보고 중개업소를 견제해야 합니다."(인터넷 부동산카페 강동구 게시판)
국내에서 가장 큰 인터넷 부동산 카페인 이곳에는 최근 "호가(呼價)를 낮춘 매물을 신고했더니 매물이 사라졌다" "부동산들을 압박하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또 다른 게시판에서는 호가를 13억~14억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주민들이) 똘똘 뭉쳐 시세 방어가 잘 될 것 같다"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부동산 관련 카페와 카카오톡, 밴드 등 SNS(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가격 담합(談合)이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이 지속되자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집주인들과 거래를 한 건이라도 더 성사시키려는 공인중개사들이 인터넷 부동산 카페와 SNS 등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온라인 부동산 카페와 SNS 등을 집값 담합의 진원지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인터넷카페·SNS 중심으로 "집값 올리자"
과거 부녀자대표회의나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이뤄지던 담합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위력이 더 커졌다. SNS에는 서울 목동·동북선·재건축 등 지역과 호재를 중심으로 100~500명씩 모인 단체방만 수십 개가 넘고, 인터넷 카페에는 지역별 게시판이 따로 마련된다. 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양한 유형으로 담합에 나선다.
가장 많은 것이 '호가 지정'이다. 서로 고가(高價) 매물 정보를 공유하며 그 가격 밑으로 거래하지 말 것을 독려한다. 11일 주민 500여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북 지역 채팅방에 "방금 9억원에 거래됐다고 한다"는 글이 올라오자 "이 동네 아파트 가격은 10억원은 돼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10억원까지 가격을 올려보자는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 "공인중개업소에서는 가을에 매물이 많아지니 팔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하자 "매매가는 계속 오른다" "부동산(중개소) 말은 믿지 말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낮은 매물을 내놓은 부동산을 신고하라'는 허위 매물 신고 독려도 늘었다. 호가를 올리기 위해 급매물 등 낮은 가격에 나온 매물을 '허위 매물'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다. 실제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지난 8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에 접수된 허위 매물 신고 건수는 2만1824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7월 신고 건수(7652건)의 3배이다.
허위 매물로 신고될 경우 48시간 동안 해당 매물이 삭제되고 공인중개사는 신규 매물 등록을 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공인중개사는 물론, 급한 돈이 필요해 시세보다 싸게라도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특정 공인중개업소 이용을 거부하거나 독려하는 식의 집단행동도 성행한다. 일부 위례신도시 주민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는 "(공인중개사들이) 배불러 터지니 주민을 가지고 논다. 굶어 봐야 주인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역 공인중개사에게 매물을 주지 말고 다른 지역의 공인중개사를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해당 지역 공인중개사는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물건을 팔면 허위 매물로 신고를 하고, 매물을 거둬가는 식으로 압박하기 때문에 급매물이 들어와도 몰래 파는 수밖에 없다"며 "요즘은 지역 주민방의 위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업소도 "한 건이라도 더 해보자"
주민들은 반대 주장을 편다. 중개업소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담합해 시세를 낮게 조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는 집을 판 노부부가 "중개업자가 주변보다 1억원이나 싼 가격을 불러 시세를 모른 채 팔았다"며 계약 파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목동 주민들은 "중개업소끼리 짜고 가격을 끌어내려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며 현지 중개업소 단체 대표가 회원 업소에 뿌린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매물을 거둬들여라'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에도 가격 정보를 올리지 말라' 등의 지시가 담겨 있었다. 이 메시지에 대해 주민 A씨는 "집주인들로 하여금 자기 집 시세를 알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며 "요즘엔 중개업소 단체채팅방을 통해 '비(非)회원 업소와 매물 공유 금지' '담합 위반 업소 퇴출' 등의 지침을 내며 가격 낮추기 담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목받은 공인중개 사무소 측은 "지역 업자들끼리 친목회를 만들어 질서를 지키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을 뿐"이라며 "주민들이 집값을 더 받으려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집값이 오르자 주민들도, 공인중개사들도 이번 기회에 돈을 벌겠다고 난리"라며 "과거와 달리 인터넷 카페와 SNS가 활발해지면서 아수라장이 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터넷 카페와 주민 단체 채팅방 등이 활성화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 장점이지만 이들이 시장을 과열시키고, 매물 잠김 현상을 유도하고 있는 면도 있다"며 "공인중개사를 협박하거나 위력을 행사하는 불법행위를 처벌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