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리포트|서울 4대 집장촌, 지금은① 미아리텍사스]
서울시 지난 7월 신월곡1구역·성북2구역 결합개발 확정
지상 46층 아파트 2200여 가구·호텔·오피스텔 등 들어서
부동산 관계자 "실투자금 5억…강북치고 장벽 높은 편"
지난 9일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보였다. 낡고 허름한 건물이 빼곡한 골목길 입구는 가림막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성매매업소가 몰려있는 집창촌,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다.
이곳은 1960년대 말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던 양동과 종로3가 업소들이 폐쇄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들며 사창가로 형성됐다. 행정구역은 하월곡동이지만 미아리고개가 멀지 않아 ‘미아리 텍사스’로 불렸다. 1980년대 ‘청량리 588’, ‘천호동 텍사스’와 함께 서울 3대 사창가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된서리를 맞은 뒤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슬럼가로 변해버렸다. 실제 2~3명이 겨우 지날 만큼 비좁은 집창촌 골목은 대낮에도 쥐 죽은듯 조용했다. 200여m에 걸친 골목 양옆 가게 문은 굳게 닫혔다. 빨래와 가재도구만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한때 300개를 웃돌던 성매매업소도 100여개로 줄었다.
‘버려진 동네’였던 미아리 텍사스에도 개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3년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고 2009년엔 ‘신월곡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이 결정됐다. 미아리텍사스는 상업지역인데다 지하철 초역세권이어서 개발 여건은 좋았다. 문제는 성매매 업소 폐쇄 등을 놓고 주민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15년째 별다른 진척이 없었던 것.
그런데 최근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서울시가 지난달 신월곡1구역과 성북구 성북2구역의 결합 개발을 확정하면서 미아리텍사스 개발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것이다.
■‘결합 개발’로 돌파구 마련되나
신월곡 1구역과 성북 2구역의 결합 개발은 국내 첫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각자 조합을 만들어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되 개발 제한이 많은 성북2구역이 남는 용적률(80%)을 신월곡1구역에 넘기면 신월곡1구역은 초고층 개발로 얻은 수익을 성북2구역에 나눠주는 방식이다.
백승문 신월곡1구역 재개발조합 사무장은 “80% 용적률을 받아 수익이 나면 추후 42(성북2구역)대 38(신월곡1구역)로 나누기로 했다”고 했다.
신월곡 1구역에는 당초 용적률 600%를 적용해 최고 39층 아파트 1192가구와 호텔, 오피스텔 등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결합 개발로 용적률 80%를 더 받아 최고 46층까지 층수를 높이고 아파트도 2213가구로 1000가구 이상 늘어난다. 사업성이 한결 더 좋아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조합측은 재개발 사업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추정 비례율(종전 자산 가치 대비 수익률)이 116.7%에 달한다고 예상한다. 대부분 조합원의 종전 자산평가 금액이 예상 분양가를 웃도는 것이다.
허경자 부동산명가 대표는 “주변 새 아파트 시세가 8억원 정도인데 이 가격대에 일반 분양이 이뤄진다면 조합원 추가 분담금 염려가 거의 없다”면서 “오히려 새 아파트를 받고 1억~2억 정도 돌려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주변 집값 오름세…지분 사려면 5억대 필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신월곡 1구역 일대 주택 가격은 강세다. 길음·월곡 균형발전촉진지구 사업 등 주변 재정비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개발 기대감으로 아파트값이 최근 상승세다.
신월곡 1구역에서 500m 떨어진 길음2구역 ‘길음래미안센터피스’(2352가구)의 경우 지난 3월 전용 84㎡ 입주권이 8억5000만원(24층)에 거래됐다. 분양가와 비교하면 2억원 이상 프리미엄이 붙었다. 신월곡1구역 인근 ‘길음뉴타운8단지래미안’(1497가구) 전용 84㎡는 지난 7월 8억1000만원(9층)에 실거래됐다.
신월곡 1구역도 최근 호가가 계속 오르면서 매물을 찾기 어렵다. 특히 이곳은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다세대·연립·빌라가 드물어 90㎡(30평대) 이하 작은 매물을 찾기 어렵다. 대지 지분이 큰 단독·다가구 주택이 많아 실투자금이 5억원 안팎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매물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신월곡1구역 지분 가격은 90㎡(30평대) 기준으로 3.3㎡ (1평)당 2000만~2200만원이다. 단독주택 115㎡의 경우 5억~6억원대이며 호가는 계속 오르는 추세다.
하지만 사업성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걸림돌도 적지 않다. 재개발 전문가인 A씨는 “8억원대 새 아파트를 받고 환급금까지 예상되는데 매매 시세가 6억대라는 건 그만큼 사업이 길어지거나 다른 위험이 크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시행인가, 하반기엔 관리처분인가를 각각 받아 일반 분양까지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합 측 예상대로 재개발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 실투자금 ‘5억’ 높은 진입장벽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신월곡1구역 지분 투자에는 주의할 점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하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실투자금이 5억원 정도 필요한데 강북 재개발치고는 진입장벽이 높다”며 “건물 노후화가 워낙 심해 전세 놓기 힘들고 직접 살기도 어려운 게 단점”이라고 했다.
조합 내부 갈등과 주민들의 이해관계 충돌도 문제다. 길음역 인근에 대형 빌딩을 가진 건물주들은 지금도 수익성이 좋아 불확실성이 큰 재정비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데 기존 조합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2015년 조합 집행부 상대로 직무정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1·2심 모두 승소하면서 조합 운영이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새로운 임원을 선출해야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집창촌 폐쇄에 따른 영업보상도 골칫거리다. 하월곡동 Y부동산 관계자는 “성매매 업소의 경우 월세가 평균 100만원 정도인데 요즘은 이보다 더 낮아졌고 나중에 보상금을 타내려고 아예 월세를 내지 않고 버티는 세입자들도 있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업지역 재개발은 용적률이 높아 사업성이 좋고 실패한 사례를 찾기는 드물다”며 “하지만 사업성이 좋은 만큼 투자자들끼리 갈등 요소가 많아 사업 장기화에 대응할 자금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