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형 개발 사업이 발표되면 주변 부동산 가격이 꿈틀거린다. 개발업체가 ‘00조 경제 효과’ ‘00년 개발 완료’ 등 그럴싸한 계획을 발표하면 투자자들은 그것이 실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여기에 지방정부나 공기업까지 개발주체로 이름을 올리면 투자자는 “정부가 보증한 사업”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부동산 시장에선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워도 실현되지 않는 사업이 부지기수다. ‘세상을 뒤흔들 것 같던’ 대형 개발 사업만 믿고 투자했다가 10년 넘게 자금이 묶이거나 결국 무산돼 낭패를 보는 경우가 흔하다.
땅집고는 수도권에서 발표된 지 10년 넘도록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거나 무산된 ‘3대 초대형 개발 사업’들의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중국으로 간 ‘유니버설스튜디오’, 송산그린시티의 운명은…
‘화성 유니버설스튜디오’는 말만 많다가 끝내 실패한 수도권 대규모 프로젝트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북동쪽 부지에 세계적인 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유치하고, 쇼핑몰·골프장·콘도 등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2007년 계획이 발표됐고 총 사업비는 5조원 정도다. 이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 140만명 증가에 15조원 상당 생산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2년 토지주인 한국수자원공사와 시행사가 땅값 지불과 개발 범위 등을 합의하지 못해 처음 무산됐다. 그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2015년 말 수자원공사가 맡아 다시 추진했다. 그러나 테마파크 판권을 가진 미국 유니버설 산하 유니버설 파크&리조트(UPR)를 끌어들이지 못해 2017년 또 다시 무산됐다.
화성시에 아시아 두 번째로 들어선다던 유니버설스튜디오는 결국 중국 베이징으로 갔다. UPR은 약 3조5000억원을 들여 베이징에 2020년까지 테마파크를 개장할 계획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일본과 중국에 이어 한국에 또 다른 글로벌 규모의 테마파크가 들어서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경기도와 화성시, 수자원공사 등은 아직도 국제 테마파크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기관들은 공식적으로는 “유니버설뿐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업체를 설득해 국제테마파크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 무산 이후 배후지였던 송산그린시티는 도시 전체가 ‘불 꺼진 신도시’로 바뀌고 있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고 각종 기반시설도 줄줄이 미뤄지는 탓에 이 지역의 심각한 미분양·미입주 문제는 해결이 힘든 상황이다.
■ 검단신도시, ‘4조원 외자 유치’ 헛꿈에 발목 잡혀
검단신도시는 2007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돼 10년 넘도록 진척이 없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인천도시공사가 50%씩 10조8218억원을 들여 주택 7만4000가구, 인구 18만36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를 2023년까지 개발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 계획만 있을 뿐 이곳에 기업을 유치할 방법이 없었다. 앞서 토지보상이 지연되고 2013년 5월에는 검단2지구 사업이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인천시가 박근혜 정부 시절 중동 자본을 끌어들여 4차산업 중심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검단스마트시티’ 건설 사업을 발표했다. 인천시는 두바이로부터 4조원의 자금을 유치해 4.72㎢에 ICT와 교육,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4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2016년 10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미래부 장관 등 인사를 초청해 유정복 당시 인천시장이 개발 사업 선포식까지 여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한 달 여만에 검단스마트시티 사업은 무산됐다. 인천시가 두바이에 사업이행 보증금, 계약금 등으로 8600억원을 현금으로 내도록 요구하자, 두바이 측이 거절했던 것. 결국 인천시와 LH는 기존 계획은 모두 포기하고 검단신도시에 아파트를 지어 올리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달쯤 7개 건설사가 동시분양 형태로 아파트 8000여 가구를 처음으로 공급한다.
그러나 시장 전망은 불투명하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주택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검단신도시는 교통·산업 인프라가 부족해 좋은 분양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며 “분양가를 대폭 낮추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14년 제자리걸음했던 고양 한류월드, 시작은 했지만…
경기 고양시 한류월드는 2004년 경기도가 한류(韓流)를 테마로 복합관광단지를 만들겠다며 시작한 도시개발사업이다. 킨텍스 주변 99만㎡ 부지에 테마파크, 호텔, 방송·업무시설, 상업·주거시설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한류월드는 10년 넘게 추진과 무산을 반복하며 지지부진했다. 고양엠블호텔(2013년 준공)과 EBS디지털 신사옥(2017년 준공)이 들어선 것을 그나마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입주한다던 복합시설 부지에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2016년 대통령까지 나서 한류월드 사업을 다시 추진하면서 되살아났다. 새롭게 계획된 사업은 ‘K-컬처밸리’. 2016년 CJ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K-컬처밸리는 축구장 46개 규모인 30만㎡로 들어서는 복합테마파크. 총 사업비가 1조 4000억원 규모다. CJ측은 'K-컬처밸리' 사업 계획 중 공연장은 2016년 착공했지만, 핵심시설인 테마파크와 상업시설, 호텔은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테마파크는 고양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중이며 또 다른 암초를 만나지 않는다면 오는 9월 착공해 2021년쯤 개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조(兆)단위 초대형 개발사업의 경우 글로벌 기업의 경영 판단과 국내·외 정치적인 이슈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건설사와 분양업체들이 대형 개발사업을 ‘미끼’로 분양을 했다가 사업이 중단·취소돼도 외부 요인에 따른 결과인 경우가 많아 ‘허위 분양’으로 보상을 받기도 어렵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대형 개발 사업의 실현 가능성은 투자자가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며 “개발사업을 근거로 분양하는 주택·상가 등 부동산 상품을 선택할 때는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찾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