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성신여대 정문으로 가는 골목길에 있는 지상 3층짜리 상가는 이른바 ‘스타벅스 건물’로 불린다. 스타벅스는 2012년 이 건물을 통째로 리모델링한 후 전체를 임차해 쓰고 있다. 원래 보증금 2억원, 월 임대료 900만원이었던 건물에 보증금 3억5000만원, 월 임대료 1300만원을 내고 입주했다.
스타벅스가 입주하면서 건물주는 소위 ‘대박’이 났다. 2011년 이 건물을 29억원에 매입했는데 스타벅스가 들어온 후 2년만인 2014년 46억6000만원에 팔았다. 스타벅스 덕에 건물 값이 3년 만에 17억원이나 오른 것이다.
부동산의 가치는 입지가 좌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임차인이 바뀌었다고 건물 값이 오른다고 하면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건물주가 얻는 임대료 수입이 월 900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44% 오른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여기에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는 임대료가 밀리는 일이 없다. 한번 매장을 내면 어지간해서 매장을 옮기지도 않아 공실(空室) 위험이 없다. 현재 이 건물 임대료는 월 1500만원, 시세는 60억원대로 2014년 당시보다 더 올라 있다.
■ 건물주보다 더 모시기 힘든 갑(甲) 임차인
건물 가치를 좌우하는 첫째 조건은 물론 입지다. 입지가 탁월해 임차인들이 많은 임대료를 내더라도 입점하고 싶어 경쟁하는 상가는 당연히 비싸다. 하지만 스타벅스 사례처럼 입지가 조금 떨어져도 어떤 세입자를 넣느냐에 따라 건물 가치가 확 달라진다. ‘건물주 보다 센 임차인’이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의 지상 2층짜리 상가도 마찬가지다. 이 건물은 원래 보증금 1억원, 월 임대료 800만원에 가구점들이 입점해 있었다. 그런데 2010년 롯데리아가, 2015년 다이소가 각각 들어오는 등 임차인이 바뀌면서 보증금이 3억5000만원, 월 임대료가 1300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2010년 20억원 정도였던 건물 시세 역시 현재 40억원 정도로 두 배 뛰었다.
■ 매출 꾸준하고 집객 효과 높은 임차인 들어와야
건물 값을 올리는 좋은 세입자의 요건은 무엇일까? 우선 장사가 잘돼 매출이 꾸준해야 한다. 그래야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
인테리어에 자금을 많이 투자하는 업체가 좋다. 일반적인 점포 인테리어 비용은 연면적 1평(3.3㎡)당 150만~200만원 정도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는 평당 250만~300만원까지 투자한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수억원을 들이면 쉽게 점포를 옮기지 않아 장기 임대가 가능하다.
브랜드 지명도와 이미지가 좋고,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난 임차인이 좋은 세입자가 된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위치한 ‘에잇세컨즈’ 건물은 2014년 5월 1050억원에 팔렸다. 이 건물은 2012년까지 ‘뉴욕제과’가 입점했던 건물인데, 대기업 의류 매장인 에잇세컨즈가 1~4층을 통째로 임차해 매장을 내면서 건물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좋은 세입자의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소 브랜드나 신규 스타트업도 의외로 좋은 임차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집객 효과가 높은 점포는 건물 내 다른 점포의 매출도 높일 수 있어 건물 가치를 끌어올린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하 1층~지상2층짜리 상가가 그런 사례다. 이 상가는 지하철 강남역 근처에 있다. 다만 메인 상권과 떨어진 언덕 위에 있어 유동 인구는 적은 편이다. 화랑과 창고·소기업체 사무실로 쓰인다. 그러다가 인맥 공유와 직장인 모임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2교시’가 만든 서양식 주점 ‘슬링 펍’(2015년)과 이들이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 ‘굿브라더 스페이스’(2017년)가 차례로 입점했다. 제이에스부동산중개법인 정연재 이사는 “두 점포의 경우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을 합쳐 하루 1000명 이상 찾을 만큼 집객 효과가 뛰어나다보니 건물 가치가 2배 정도 뛴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갑(甲) 임차인이 선호하는 상가 건물은?
스타벅스처럼 좋은 세입자는 입점할 건물을 까다롭게 고른다. 우선 건물 위치가 ‘강남역 대로변’처럼 누구나 탐내는 자리는 아니어도 중심상권에서 걸어서 5~10분 이내여야 한다. 되도록이면 코너 위치가 좋다. 건물이 낡아도 상관 없지만 바닥면적이 충분히 넓고 리모델링이 가능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는 외부에서 점포가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건물 전면부 면적이 넓은 것을 선호한다.
건물주 역시 좋은 임차인을 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김영정 빌딩드림 이사는 “최근 건물주들도 임차인에 따라 건물 가치가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를 입점시키기 위해 건물주가 직접 대기업 본사에 입점을 제안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어 “돈 되는 세입자 유치에 성공하면 건물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초기 임대료를 깎아주는 등의 투자도 필요하다”면서 “혹시라도 돈 되는 임차인이 빠져나간 후에는 건물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